유난히 부산시장이 자주 바뀐 시기가 부산의 1990년대 언저리이다. 금정구 구서동, 남산동 일대의 공장 부지에 아파트를 허가하고, 대우마리나가 우동 산기슭과 해안가에 아파트를 지은 시기도 그 전후의 무렵이다. 급기야는 해운대구 좌동에 대단위 신시가지를 만들고 나아가 수영공항 부지 주변에 벡스코를 넣으면서 센텀시티란 이름으로 마천루 지역을 만들었다. 한마디로 1990~2000년대의 부산은 오늘의 부산을 동서 간에 확연히 기울어진 도시격차 운동장으로 만든 결정적인 출발점이었다. 그 여세는 30여 년이 흐른 지금, 최근 신축된 어느 초고층 해운대 주상복합 건물에서 아주 정점을 찍는다.
1990년대는 우리나라가 소득 1만 달러로 막 진입하려는 시점이고, 산업구조는 중화학산업으로 중심이 이동하는 시기였다. 따라서 부산 주변의 울산과 창원 등의 도시세가 확장되고 있어 부산의 부유층 건설 수요들이 자연히 더 나은 주거시설을 원하면서 땅값이 싸고 공사가 용이한 외곽지역을 향하게 될 때이다. 당시 부산시 도시행정은 이처럼 외곽으로 흩어지려는 부유층 분산을 안으로 응집하려는 내부화의 전략적인 도시계획을 동시에 세웠어야 했다. 그런데 부산시의 당시 처사를 보면 도시내부는 내팽개치고 앞장서서 외곽 주거지 개발로 나갔다.
동래나 해운대나 수영지역은 부산의 내부 도심부와는 연결점이 없는 고유한 자연보전 지역들이었다. 결국 급히 조성된 외곽거주지에서 도심으로 들어오는 전용도로를 만들랴, 기존 차선을 넓히랴, 없는 예산에 도로 공사가 분주해서 한동안 택시운행이 도로 체증으로 가장 느린 도시였다. 급기야 2000년대에 들어서는 도시 내부 주민들과는 이용수익성 면에서 관계가 불분명한 광안대교까지 만들었다.
도시는 부산 같은 세장형인 경우 홍콩처럼 내부로의 밀도성과 상호성이 아주 중요하다. 따라서 1990년대에 부산은 서면 범일동 초량 중앙동 충무동 송도 다대포 하단 사상 개금 등을 연결하는 환상형 도시연결 복합 고도개발이 먼저 필요했다. 물론 이들 지역을 서로 가로지르는 여러 터널들도 진즉에 필요했다. 부산 역사의 긴 호흡에서 보자면 동래 수영 해운대는 원래의 아름다운 자연지역으로 영원히 남겨 두거나, 미래 부산의 성장 동력으로 판교나 대덕 같은 첨단연구단지로 만들었어야 했다.
미국 마이애미를 가보라. 좁은 해안가에는 고층 건물이 군데군데 떨어져 지어져 어디서든 웬만해선 바다를 가리지 않는다. 부산 동부 바닷가는 건물 병풍도 그런 병풍이 없다. 천혜의 자연자산이자 글로벌 관광자원을 여유층과 부유층의 쾌적한 거주지로 덜컥 내준 일은 몇 번을 생각해도 못내 아쉬운 일이다.
그런 세월이 흘러 그 동부의 신주거지 지역도 어느새 재건축의 연한이 다 되어 간다. 근자에 급등한 광안리의 한 해안가 재건축 아파트 단지의 시세가 도시 내부 주민의 입을 딱 벌어지게 한다. 이대로 가면 동부해안가의 연한이 다 된 재건축단지들은 줄줄이 더 높은 시세를 기록할 공산이 크다. 이로써 동서격차 해소는 공염불이 뻔하다.
지금이라도 부산은 먼저 도시 내부지역의 창조적인 도시혁신이 가열차게 이루어져야 장기적으로 동서격차 해소는 가능할지 모른다. 그런데 향후 동부지역은 민간 자본들이 주로 의견을 모아 추진을 하게 되고, 도시 내부나 서부지역은 규제와 지원 권한을 가진 행정당국이 먼저 물꼬를 터야 하니 동서 간의 도시혁신의 신속성과 역동성 차이는 물어볼 필요가 없다.
영국 런던은 템스 강가의 낙후지역인 카나리와프 지역을 혁신하면서 바로 강 건너의 그리니치와 로더히쓰 지역은 원래의 외곽도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게 했다. 거주는 역사기반과 문화자산이 많은 도시 안에서 품격있게 하고, 일은 외곽의 업무혁신구역에서 활기차게 하는 방식으로 우리 MZ세대 같은 보헤미안적인 젊은 글로벌인재들을 런던 정주민으로 안내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저층의 건축물로 채워진 파리 도시 내부도 센강 변 주변에 고층의 문화와 미래연구 상업 주거가 가능한 복합건축을 허용하고 런던과 미래도시 경쟁을 하고 있다. 그런데 부산은 오늘도 달리 별 얘기들이 없다.
미래경영학자·전 경기대 경영전문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