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고흥군 고흥반도에서 15번 국도를 따라 남쪽 끝까지 가면 포두면 끄트머리에서 나로1대교를 건너 내나로도로, 다시 나로2대교를 건너 외나로도로 들어선다. 한갓진 땅끝에서 이어진 이 섬들이 낚시꾼 외의 이들에게 이름을 알린 건 2000년 개발에 착수해 2009년 완공된 나로우주센터가 들어서면서부터다. 그렇지만 두 나로도는 여느 섬이 그렇듯이 지난 20여 년 시끌벅적함을 훌쩍 뛰어넘는 오래 묵은 역사와 문화와 사람의 이야기를 품었다. 조선시대에는 왕의 말을 키우던 목장이 있었고 이는 외나로도에 풀 초 자가 들어간 여러 지명을 남겼다. 축정항으로도 불리는 외나로도 나로도항은 천혜의 포구라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의 수산 침략 전초기지가 됐다. 일찌감치 도로가 포장되고 제빙공장이 들어섰다. 게다가 상수도 시설과 전화, 자가발전 시설까지 갖췄다. 이 모두가 수탈을 위한 것이고 일본인들을 위한 것이었지만 이를 보면 나로도의 번성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다. 전국의 돈이 몰린다는 나로도의 전성기는 1970년대를 지나며 끝났는데 제빙공장과 유곽, 골목 등 일제강점기의 자취는 여전히 뚜렷하다.
이처럼 풍성한 이야기를 품은 섬을 찾으러 멀리 갈 것도 없다. 가까이 경남의 바다를 수놓은 여러 섬이 저마다 사연을 풀어놓는다. 우리나라 기초 지자체 가운데 전남 신안군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500여 개의 섬이 있는 곳이 통영시다. 육지보다 월등히 넓은 바다를 지닌 통영에서 밤하늘을 밝히는 별처럼 한려수도를 빛내는 섬 가운데 욕지도가 있다. 최근에는 한려수도를 발아래 두고 감상할 수 있는 모노레일과 출렁다리로 이름을 알렸지만 욕지도의 이야기는 더 멀리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선사시대 패총 유적을 시작으로 삼국시대와 고려 시기의 유물도 나온다. ‘알고자 하거든’이라는 의미의 욕지도라는 지명도 1378년 고려 우왕 때의 일을 적은 고려사 기사와 조선 태종 때인 1409년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에 나온다.
공도 정책으로 한때 섬이 비었다가 조선 말기 입도가 재개된 욕지도는 외나로도처럼 황금어장에 눈독 들인 일본인이 곧바로 19세기 말부터 발을 들였다. 이들이 자리 잡은 곳이 욕지항 북쪽, 자부랑개마을로도 불리는 근대 어촌의 발상지 자부마을이다. 고등어 파시가 열렸던 욕지도에는 한때 2000명 넘는 일본인이 살 정도로 번창했다. 물 반 고등어 반이던 그 시절 뱃사람들로 흥청거렸을 마을은 지금은 어르신들과 고양이들만 느긋하게 걸음을 옮기는 한적한 마을이 됐다. 마을 뒤의 산자락에는 옛 통영경찰서 욕지주재소 욕지고등심상소학교 건물이 남아있고 마을 안에도 일본인이 직접 운영했다는 목욕탕이 낡은 모습 그대로 세월을 보낸다. 천연기념물 모밀잣밤나무 군락이 병풍처럼 둘러싼 자부마을은 이제는 쇠락해 고등어 대신 조용히 세월을 낚는다.
욕지도와 나로도가 두드러지는 역사를 품고 있지만 여느 섬들을 들여다보면 특별하지는 않다. 모든 섬이 특별하다. 점점이 흩어진 보석 같은 섬들이 저마다의 풍요로운 역사와 사람과 이야기를 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섬의 빛은 점차 희미해지는 중이다. 섬의 인구는 꾸준히 줄어들고 주민의 평균 연령은 차츰 높아진다. 아이들이 줄어드니 학교도 차츰 문을 닫는다. 매물도 당금마을의 매물도분교처럼 뭍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캠핑장으로 명맥을 유지하거나 그만한 기회조차 얻지 못하면 묵은 풀밭이 되기 일쑤다. 아예 모든 주민이 떠나 유인도에서 무인도가 되기도 한다.
차츰 사라져가는 섬의 문화, 섬의 역사를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지난달 전남 목포에 섬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한국섬진흥원’이 출범했다. 섬진흥원은 섬에 대한 연구와 조사를 통해 섬의 가치를 제고하고 다양한 조사와 연구를 통해 우리나라 섬 정책을 이끄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런데 섬에 대한 연구와 정책 교육 교류 등을 두루 맡은 섬진흥원의 역할은 기대가 크지만 이처럼 사라져가는 섬 문화와 역사에 대한 연구는 그 영역의 방대함으로 한계가 있다.
섬진흥원 유치전에서 고배를 마신 통영시를 중심으로 경남에 섬박물관을 건립하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중복된 기능에 대한 비판도 나올 수 있겠지만 섬이 갖는 고유한 특성, 섬 문화와 역사의 다양성을 연구하고 알리는 일은 충분히 차별성을 담보할 수 있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은 앞으로 50년 후엔 현재 464개의 유인도 가운데 10% 가까운 37개 섬이 추가로 무인도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섬의 인구가 더 줄어들고 무인도가 더 늘어나기 전에 섬이 간직한 고유한 문화자원과 다양성을 담아 섬의 가치를 알릴 박물관이 필요하지 않을까. 기왕이면 섬진흥원이 들어선 전남에 못지않은 많은 섬을 보유하고 그 섬 하나하나의 고유문화와 특성이 뛰어난 경남이 그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
편집국 부국장 겸 경남본부장 ocean@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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