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예능프로그램의 패널로도 유명한 서울 모 피부과 원장이 운전면허 시험에 무려 10번 넘게 떨어졌다고 방송에서 고백하는 걸 봤다. 명문 의대를 졸업하고 전문의 자격증까지 딴 사람이 정작 운전면허가 없어 한동안 부인이 출퇴근 시켜줘야 했다는 것이다. 비정규직에 대한 불만이 아무리 커도 시험을 쳐서 정규직 전환하겠다는 회사의 제안은 보통 선뜻 받아들이지 않는다. 시험이라는 게 원래 그렇다. 어지간한 공부의 달인이 아니고서야 시험이라는 문턱에 부담을 느끼게 마련이다.
국민의힘이 내년 6월 지방선거에 출마할 공직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자격시험을 치른다. 선출직 공직에 나서려는 사람이 갖춰야 할 기본소양을 측정하겠다는 것이다. 당이 유튜브에 정당법 지방자치법 정치자금법 당헌·당규 사회현안 등과 관련된 강의영상을 올리면 이를 학습해 응시하는 방식이다. 국민의힘 당적의 광역 혹은 기초의원이 되려면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다. 성적이 좋으면 공천에서 가산점을 받는다. 원래 이준석 대표의 구상은 합격제였으나 여러 논란을 감안해 가점제로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02년 지방선거가 끝나고 부산의 한 지역구가 한동안 소란스러웠다. 선거 벽보를 잘못 게시하는 바람에 떨어졌다며 낙선자 한 명이 문제제기를 하면서다. 지역구 게시판에 ‘가’와 ‘나’ 후보의 순서가 뒤바뀐 채 붙어있었다는 것이다. 당시만 해도 지금과 달리 기초의원은 정당공천제가 아니어서 후보자들이 추첨으로 기호를 뽑았다. 대부분의 선거구에서 ‘가’후보가 당선됐으나 이곳에선 이례적으로 ‘나’후보가 붙었다. 벽보 순서가 당락에 실제로 영향을 미쳤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유권자들이 후보 개개인의 경력이나 자질에 얼마나 무관심한가를 후보자들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음을 보여주는 해프닝이어서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지방의원 후보자를 시험으로 뽑는 일은 정당 사상 처음이자 해외에서도 전례를 찾기 힘들다. 무급봉사직이었던 지방의원이 유급으로 바뀐지 15년이나 됐는데도 생업을 유지한 채 각종 사익을 추구하고, 해외 연수나 수당 인상 같은 권리와 혜택에만 눈독 들이는 사례를 숱하게 본다. 조례를 만들고 예산을 심의할 능력에 의문표가 붙은 사람이 여전히 많다. 오죽하면 시험에서 걸러내겠다고 할까 하는 공감대는 국민 사이에 의외로 넓다. 요즘 9급 공무원 합격자들의 수준을 감안하면 이들을 견제해야 할 사람들의 역량이 이보다 낫거나 최소한 떨어지지는 않아야 하지 않겠나.
강필희 논설위원 flut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