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에서 조사해봤더니 54명 중의 36명이 봤다고 하네요.”
시내 모 고등학교에 근무하는 J 선생님이 전하는 말속에 놀라움이 묻어났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청소년관람불가 영상물인데도 무방비로 노출되어 대부분의 학생이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득 2001년에 개봉했던 영화 ‘친구’가 소환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역시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이었던 이 영화가 개봉되자 개봉주말 최다 관객 동원 등 한국영화계의 각종 신기록을 갈아치우며 초대박 흥행을 기록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교육계, 특히 부산의 교육인들에게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남기는 사건이 있었다. 사건은 지금 이맘때인 2001년 10월 13일, 한참 수업 중이던 시내 D 고교 1학년 2반 교실에서 일어났다. 수업 중에 장기결석하던 학생이 느닷없이 들어와 선생님과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흉기로 급우를 찔러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했는데 바로 영화 ‘친구’에서 흉기 쓰는 법과 잔인하게 살해하는 장면을 여러 번 돌려본 뒤에 저지른 일종의 모방 범죄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함께 학교에서는 학생들 사이에 욕설이 공공연한 일상어로 사용되는데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싶다. 영화 ‘친구’는 폭력조직에 가담한 두 주인공 사이에 여러 갈등이 야기되어 어린 시절의 우정이 깨지고 결국 둘 다 비참한 결말을 맞이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런데 청소년에게 노출되면 이렇듯 알맹이는 빠지고 자칫 폭력과 욕설이라는 껍데기만 남기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오징어 게임’도 성인들에게는 많은 메시지를 던져주는 훌륭한 콘텐츠로 구성되어 있다. 개인적 소감이지만 이 드라마는 어릴 때 함께 환호하며 마냥 재미있던 놀이가 같은 놀이판일지라도 어른이 되면서 오로지 승자독식의 경쟁사회로, 살아남기 위한 상호 불신을 조장하는 생존 게임으로 변할 수 있다는 데 대하여 경종을 울리는 듯하다. 그런데 이러한 알맹이를 빼고 나면 ‘예사로 살인하는 생명 경시’, ‘극단적인 상호 불신과 공동체의 해체’ 등이 껍데기가 되어 그저 잔인한 호러물로 전락할까 우려가 된다. 이와 함께 걱정되는 것이 또 하나 있다. 이 작품의 로고에 ‘오징어’ 놀이를 형상화했고 ‘딱지치기’로 시작하여 ‘무궁화 꽃이 피웠습니다’ ‘줄다리기’ ‘구슬치기’ ‘달고나(똥과자)’ 등으로 지금의 중·장년 이상의 연령층에는 따뜻한 추억 속에 잠겨있던 동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소재이다. 그런데 이러한 놀이를 해본 적이 없는 청소년에게는 이 드라마의 놀이마다 연출된 잔인한 장면으로만 남게 될 수 있다. 이러한 우려 때문에 일부 학교에서는 문자를 보내어 학부모가 가정에서 단속하여 달라고 부탁하고 있는 듯하여 딱하기도 하다.
아무튼 이 드라마가 넷플릭스가 정식으로 서비스하는 모든 나라에서 시청률 1위라는 기염을 토하여 세계가 열광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 들어 더욱 우리의 문화, 한류가 세계적인 흐름을 만들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자본주의 계급사회에 대한 메타포로 한 지붕 밑에 지하와 지상으로 설정된 영화 ‘기생충’, 비록 순수 한국 영화는 아니지만 한국 이민자의 삶을 다룬 영화 ‘미나리’ 등은 이미 세계 무대에서 인정을 받았다. 그런가 하면 부산 출신의 지민과 정국이 멤버로 활약하는 BTS는 미국 빌보드와 영국, 유럽 등의 POP 부문에서 정상을 장식하고 있다. 그 외 패션 관광 무술 음식 등 다양한 부문의 영역들이 함께 한류(韓流)를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 한국의 문화가 세계를 덮어가고 있다고 자부해도 될 것 같다. 이 정도면 넘치게 부강하기보다는 오직 높은 문화의 나라이기를 소원하셨던 백범 선생의 유지를 잘 받든 것일까? 그런데 영국 초등학교에서는 ‘오징어 게임’ 속의 행동을 따라 하는 학생이 있으면 부모를 호출하고 징계하겠다고 한다. 선생께서는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고 이어서 말씀하셨다.
지금은 다양한 미디어 통로를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오히려 몸으로 하는 놀이가 부족한 현대의 우리 아이들에게, 그리고 외국에 우리의 놀이문화를 제대로 즐겨볼 수 있도록 알려주는 계기로 삼는 것이 어떨까?
우리가 하던 놀이는 오로지 목표물로 향해서 날아가는 총알의 질서가 아니라 재미에 따라 함께 나풀거리며 날아가는 나비의 질서였다.
교육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