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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메디칼럼] 슬기로운 격리생활 /한일용

  • 한일용 부산백병원 흉부외과 교수
  •  |   입력 : 2021-10-04 18:58:23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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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 교수가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자신의 수업을 맨 앞줄에서 듣던 학생이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이 된 것이다.

그림= 서상균 기자
수화기 넘어 들리는 그의 목소리는 사뭇 격앙되어 있었다. 한순간에 밀접접촉자가 되어버린 현실을 믿지 못했고, 과목에 잘 적응하지 못해 더욱 애정을 보냈던 제자였던 터라 이 상황에 더 화가 나는 모양이었다. 마스크를 착용했지만 실습수업의 특성상 가까운 거리에서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었고, 그 과정을 조사하여 자가격리를 통보한 역학조사관과 여러 차례 협상을 하기도 했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Elizabeth Kubler Ross) 박사는 1969년 ‘죽음과 죽어감(On Death And Dying)’이라는 책에서 부정-분노-협상-우울-수용으로 이어지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5단계’를 발표했다. 이 과정은 비단 죽음뿐만 아니라 큰 스트레스를 받아들이는 과정도 일치한다. 친구는 이 중 처음 3단계의 모습을 너무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하루 2000명이 넘는 확진자를 만들어내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기세가 여전히 매섭다. 겨울이 다가올수록 더 걱정이다. 바이러스와 더불어 살아가는 ‘위드 코로나’를 구상하는 현 시점에서는 예방수칙을 잘 지켰지만 누구나 감염이 될 수도 있고, 확진자와 밀접하게 접촉을 할 수도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일상이 달라지고, 원치 않는 휴식과 사회에서의 격리를 통보 받은 사람들은 과연 행복할까? 필자도 바쁜 일상에 지쳐 힘들 때면 때때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행복한 생활을 상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 자가격리를 경험한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지 않은 듯하다. 자신의 의사가 포함된 ‘선택적 고립’이 아니기 때문이다. 숨 가쁘게 달려왔던 일상이 갑자기 2주 동안 멈춘 듯하며, 아무것도 미리 준비하지 않은 상태에서 격리가 시작된다. 당장 필요한 생필품부터 먹거리까지 어떤 것도 넉넉한 것이 없다.

지자체에서 기본적인 지원물품 혹은 현금 쿠폰을 발급해주지만 그것만으로는 격리 기간을 버티기 어렵다. 장보기도 불가능하고 바로 앞 편의점에도 갈수 없어 배달음식만 줄곧 시켜 먹으며 집안에서 뒹굴다가 결국 살이 ‘확 찐자’가 되어버렸다는 농담에 웃을 수만은 없는 고충이 느껴졌다.

1인 격리도 힘들겠지만, 가족과 함께 격리생활을 해야하는 사람들이 격리동선을 지키는 일은 더 힘들다. 특히 화장실이 따로 분리되어 있지 않다면 수건을 따로 사용하고, 매번 사용할 때마다 소독제로 변기와 문손잡이를 닦고 나오는 일은 정말 번거롭다.

사랑하는 가족에게 자신이 감염원이 될 수도 있다는 불안한 생각은 점점 커진다. 움직임이 줄어든 생활에 온몸이 찌뿌둥하고 불편해지면 혹시 바이러스의 감염 증상이 아닌지 불안해진다. 격리 앱이 켜져 있는 휴대폰은 전자발찌처럼 느껴지고, 자신의 잘못으로 징벌을 받는 것이 아닌데 점점 ‘가택연금’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분명히 자신도 피해자인데 마치 바이러스를 대하듯 하는 주변 시선과 말에도 상처를 입고 우울해진다.

어느 정도 마음의 안정이 된 후, 친구는 자신의 방에 집무실을 차리고 집에서 할 수 있는 사무들을 처리했다. 틈틈이 운동을 하고 평소 하고 싶었던 독서와 음악도 여유있게 감상했다. 2주간의 격리가 끝나고 해제검사에서 음성판정을 받은 그는 곧바로 2차 백신접종을 받으러 보건소로 향했다. 갑자기 찾아온 ‘격리’라는 상황을 수용하고 슬기롭게 보낸 친구와 마주앉아 마시는 커피 향이 유난히 향긋하다. 바이러스는 이렇듯 작은 일상의 즐거움을 다시 확인시켜 주기도 한다. 한 번쯤 미리 고민해두고, 만약 내게도 이런 상황이 온다면 누구보다 ‘슬기로운 격리생활’을 시작하는 것은 어떨까?

부산백병원 흉부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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