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대표작 ‘불이선란(不二禪蘭)’은 ‘세한도(歲寒圖)’ 못지않게 많은 사연을 담고 있다. 시동 달준(達俊)에게 난초 그림을 그려주려다 제자 오규일(吳圭一)에게 빼앗겨 버렸다는 배경 이야기는 전설처럼 흥미롭다. 이러한 사연을 5개의 화제로 나누어 그림 여백에 빼곡히 쓴 모습은 그림 못지않게 감동적이다. 이 화제 속에는 김정희의 그림을 대하는 태도와 사상을 담고 있어, 그의 미술세계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준거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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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이선란 인장. |
‘불이선란’은 화제뿐만 아니라 인장이 많이 찍혀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모두 15개나 되는 인장이 찍혀 있다. 이 중 일부는 김정희 본인의 인장이고, 나머지는 작품의 주인이 바뀔 때마다 찍힌 소장자의 인장이다. 각 인장들은 글자를 새긴 솜씨가 매우 뛰어나 비범한 사람들의 인장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그런데 이 인장 중 대부분은 누구 것인지 분명하게 알려져 있지만, 일부는 누구 것인지 확인이 되지 않고 학자마다 달리 주장하여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그동안 어떤 책이나 논문에서도 이 인장들의 주인을 완전히 규명한 곳은 없다. 이렇게 된 것은 자료의 부족으로 명확한 증거 없이 인장의 정체를 추정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근래에 필자에게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자료가 수집되어 모든 인장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 연구 결과가 널리 알려지지 못해, 새로 발간되는 논문과 연구서에 여전히 잘못된 서술이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언론의 교육적 기능을 빌어 그동안 완벽히 확인된 정보를 모든 사람과 공유하고자 한다.
‘불이선란’ 속 15개의 인장은 김정희, 김석준, 장택상, 손재형 등 모두 네 명의 것이다. 이 중 김정희의 것은 묵장(墨莊), 낙교천하사(樂交天下士), 김정희인(金正喜印), 추사(秋史), 고연재(古硯齋) 5개이며, 김석준의 것이 석준사인(奭準私印), 소당(少棠) 2개, 장택상의 것이 신품(神品), 연경재(硏經齋), 소도원선관주인인(小桃源僊館主人印), 물락속안(勿落俗眼), 다항서옥서화금석진상(茶航書屋書畵金石珍賞), 불이선실(不二禪室) 6개, 손재형의 것이 봉래제일선관(蓬萊第一僊館), 소전감장서화(素筌鑑藏書畵) 2개이다.
그동안 연구자들 대부분이 김정희, 김석준, 손재형의 것은 쉽게 알 수 있었으나 나머지 6개 인장의 정체를 확인하지 못해 어려움이 있었다. 특히 ‘물락속안’과 ‘소도원선관주인인’ 두 인장을 손재형과 김재수의 것으로 오해하였다. 그런데 새로이 발굴된 장택상의 인장 자료에 이 두 개의 인장이 포함되어 있어 그의 것임을 정확히 알 수 있게 되었다. 조선시대 회화 연구에서 인장은 서화 못지않게 중요한 부분이다. 더 이상 혼란이 없길 바라는 마음에 이곳에 분명히 기록해 둔다.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