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먹는 것이 바로 당신이다.(You are what you eat).
19세기 독일의 철학자 루드비히 포이어바흐의 말입니다. 섭취하는 음식으로 먹는 사람의 몸과 마음의 영양, 건강 상태를 알 수 있다는 뜻이겠지요.
없어 못 먹던 빈곤의 시기를 지나 먹을 게 넘쳐나는 풍요의 지금, 우리는 이제 무엇을 먹을 것인가보다는 어떻게 먹을 것인가에 대해 더 고민합니다. 다이어트, 치료, 사회 환경(동물 복지, 환경 문제), 종교적 신념 등 이유는 다양합니다. 채식이 대표적입니다.
주위를 살펴보면 채식주의자 한두 명쯤은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육식 제한은 기본으로 가금류, 동물의 알, 우유와 유제품이 허용되는 선에 따라 비건, 락토 베지테리언, 오보 베지테리언, 페스코 베지테리언등으로 나뉩니다.
저는 요가를 시작한 후에 사회 활동에 필요한 외식의 경우에만 육식을 허용하는 플렉시테리언으로 지냈지만 실천에 엄격하지는 못했습니다.
올해 초부터 몸이 조금씩 안 좋아졌습니다. 코로나의 여파로 일과 수입이 줄어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는데 그 기간이 길어지자 마음과 정신이 더는 감당을 못하겠는지 몸 여기저기서 신호를 보내오기 시작했습니다. 병원을 다녀보고 스트레칭도 부지런히 하고 명상 시간도 늘려봤지만 근원적 해결책이 아닌 미봉책으로만 여겨졌습니다.
건강을 되찾을 좋은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며 관련 서적과 영상을 찾아 본 끝에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자연식물식(Whole Food, Plant-Based diet)입니다.
자연식물식이란 말 그대로 ‘육류를 제한하고 가공을 거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식물을 먹는 식단’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통곡물과 야채 과일 견과류로 이루어진 식단입니다.
자연식물식이란 용어는 저서 ‘무엇을 먹을 것인가’로 알려진 영양학자 콜린 캠벨이 처음 사용했습니다. 자연식물식이 채식과 뭐가 다른가 하는 의문이 들겠지요. 채식이 무엇을 먹지 않을 것인가에 기준을 두었다면 자연식물식은 여기서 좀 더 나아가 어떻게 먹을 것인가의 문제까지 확대되었다는 데 차이가 있습니다. 정크 비건이란 채식을 하지만 비건 라면, 대체육으로 만든 햄버거, 피자 같은 가공된 비건 식품을 같이 즐기는 이들을 부르는 말입니다.
공장식 사육과 도살 동물권 환경 오염에 대한 염려와 저항으로 시작한 채식주의가 아닌 건강과 치료의 문제로 채식을 선택했다면 결코 바람직한 방향이라 할 수 없지요. 건강에 이상 신호가 들어온 제가 채식의 영역 내에서 고민이 많았던 이유입니다.
자연에서 얻은 식물성 원재료로 최소한의 조리를 거쳐 밥상을 차릴 것, 가공된 공장제 식품을 멀리하고 우유 유제품 달걀 같은 동물성 단백질의 섭취를 최소화할 것(대신 식물성 단백질의 섭취를 권합니다).
저는 선택적 채식에서 자연식물식으로 한 발 더 나아가 건강을 적극적으로 챙겨 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흰 쌀밥 대신 현미밥, 데치거나 삶아 준비한 나물 반찬, 다양한 색깔의 생야채와 제철 과일로 오늘의 식탁을 차려 봅니다.
한국의 아침 인사말에 ‘진지(밥) 드셨어요?’가 있습니다. 가난한 시절에 혹여 끼니를 놓쳤을까 서로를 염려했던 조상들의 인사법이지요. ‘어느 채식의사의 고백’을 쓴 존 맥두걸은 한국의 이 인사말을 소개하며 쌀(통곡물)을 주식으로 하는 아시아 식단의 장점을 밝힙니다.
어렸을 적 시골 외갓집에서 먹던 잡곡밥 한 그릇에 소박한 나물 반찬과 싱싱한 생야채로 채운 밥상이 떠오릅니다. 넘치지 않아 충분했던 한 끼였습니다.
내일의 건강을 위해 하루 한 끼라도 자연식물식에 도전해 보는 건 어떨까요?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