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는 질 좋고 효율적인 의료체계를 갖춰 곧잘 타국의 벤치마킹 대상이 된다. 마침 싱가포르를 여행하다 현지 산부인과 병원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곳에 사는 지인이 출산 후 젖몸살을 심하게 앓아 동행하게 되면서다. 그런데 그때 이미 새벽 1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한밤중에 응급이 아닌 일반 진료가 가능하다는 의미였다. 더 놀란 건 병원에 도착해서였다. 대기실에 앉을 자리가 거의 없을 정도로 문전성시였다. 싱가포르는 인구 밀도가 높지만 대표적인 저출산 국가다. 한국 여건과 단순 비교할 순 없겠지만 언제라도 필요한 진료를 볼 수 있는 시스템은 우리나라 워킹우먼들의 부러움을 살 만했다.
병원 진료과목 중에서 가장 기초이자 필수로 손꼽히는 영역이 ‘내·외·산·소’이다.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를 말한다. 여기에 고급 인력이 모여야 의료 서비스의 질이 상승하는 효과를 본다. 그러나 이들 네 과목의 올해 전공의 지원율은 70~80%에 불과했다.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기피 현상이 갈수록 심해진다. 내외산소는 개업의 숫자도 격감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를 보면 작년에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는 폐업수가 개업수보다 훨씬 많았다. 특히 소아과는 개업 103곳에 폐업은 154곳이나 돼 감소율이 가장 컸다.
경남 고성군은 소아과 병원 문제로 최근까지 골치를 앓았다. 몇년전만 해도 관내 소아과의원이 2곳이었으나 하나씩 문을 닫아 지난 6월부터 완전히 사라졌다. 고성군은 개원 희망자를 찾기 위해 대한의사협회 홈페이지에 공고를 내는 등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성과를 못 봤다. 그 사이 군민들은 주변 도시로 원정진료를 다녀야 했다. 고성군은 인구 5만 명 중 9000여명이 만 20세 미만 소아과 이용 계층이다. 결국 경남도로부터 예산을 50% 지원받아 기존 2차 병원과의 협약 체결을 택했고, 우여곡절 끝에 소아과 진료는 다음달부터 재개된다. 2년 전엔 지역 내 산부인과가 모두 폐업하는 바람에 같은 방식으로 산부인과 진료를 되살렸다. 소아과 산부인과 부족 현상은 대부분의 지방 중소도시에서 낯익은 풍경이다.
보건복지부가 관리하는 의료취약지역에 소아과는 경남에서 밀양 의령 함안 창녕 고성 남해 하동 산청 함양 거창 합천 등 11개 군이 해당된다. 산부인과(분만)는 여기에 사천이 추가된 12개 군이다. 병원이 없어지는 건 저출산의 결과이지만 역으로 출산 기피의 원인이 될 수 있다. 고성군의 소아과 산부인과 살리기는 지방 소멸을 막기 위한 분투이기도 하다.
강필희 논설위원 flut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