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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에세이] 이그노벨상으로 엿보는 과학강국의 길 /김병진

  • 김병진 (재)부산산업과학혁신원장
  •  |   입력 : 2021-09-13 19:08:32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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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미국 하버드대 과학 유머 잡지 AIR(Annals of Improbable Research)는 2021년 이그노벨상 시상식을 온라인 사전 녹화 방식으로 진행했다. 1991년 시작된 이그노벨상은 ‘반복할 수 없거나 반복해서는 안되는 황당한 연구’를 한 과학자 등을 수상자로 선정한다.

실제 노벨상 수상자들과 엄청난 성과를 낸 과학자들이 대거 참여하여 논문을 심사, 매년 10개 부문에서 수상자를 선정하지만 수상자를 선정한 후 대상 부문을 정하는 탓에 딱히 정해진 틀은 없다. ‘사람들을 일단 웃게 하라. 그리고 생각하게 하라’는 이그노벨상의 철학에 따라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많은 이들에게 웃음과 시사점을 동시에 주는 연구 결과에 시상하기 때문이다.

올해도 10개 부문에서 수상자를 선정했는데 ‘정치인들의 비만도가 그 나라의 부패를 나타내는 지표일 수 있다’고 한 프랑스 연구자에게 경제학상, ‘사람의 수염이 날아오는 주먹으로부터 얼굴을 보호하기 위해 진화된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과학적으로 증명한 연구진에게 평화상을 수여하는 등 재미있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그렇다고 재미있기만 한 것은 아니다. 코넬대학교 연구진은 코뿔소를 다른 서식지로 옮길 때 거꾸로 매달아 이동시키는 것에 대해 기존 우려와 달리 코뿔소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지 않음은 물론이고 옆으로 눕혀서 이동하는 것보다 더 안전하다는 것을 밝혀내어 이그노벨상 사상 최초로 운송상을 받았다.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 멸종위기종인 코뿔소의 안전과 생태계 복원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이그노벨상은 황당함을 근간으로 하지만 가설을 세우고 이를 증명하는 연구의 과정은 철저히 과학적이다.

이러한 재미와 시사성을 함께 가진 이그노벨상은 30년 넘도록 이어지고 있고 최근 들어 점점 더 대중의 관심을 받고 있다. 왜 그럴까? 과학이 재미있다는 것을 계속 보여주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누구도 관심 없던 주변의 문제들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며 과학적 과정을 통해 이유를 규명하는 과학자들의 모습에서 엉뚱하지만 창의적이고 전문적이지만 친근함을 느끼게 해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번 시상식을 계기로 역대 수상자들을 살펴보면서 우리나라 연구자는 이그노벨상을 받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헌법과 과학기술기본법에서조차 과학기술은 국민경제에 기여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는 우리나라 연구환경에서 엉뚱하고 당장에는 쓸모 없는 연구를 한다고 하면 어느 누구도 연구비를 주지 않을 것이다.

주위에서 연구 실적의 압박에 못 이겨 사회와 많은 타협을 하는 연구자들을 심심치 않게 만난다. 본인이 연구하고 싶은 주제는 뒤로하고 논문 발표가 용이하거나 연구비가 많은 주제를 쫓아 현실과 손잡게 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연구자의 창의성과 자율성은 없어지고 단기적으로 눈에 보이는 실적만을 좇는 악순환의 고리만 더 강해지고 있다.

2000년 자석으로 개구리를 공중부양 시키는 방법을 연구하여 이그노벨상을 받은 영국의 안드레 가임 교수는 그로부터 10년 후 그래핀 합성으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그가 노벨상을 받은 업적은 그래핀을 추출하는 데 있어 우리 주변에 흔한 셀로판테이프를 이용한 것으로 엉뚱한 연구를 잘 하는 연구자가 더 큰 업적을 만들어 낸 본보기이다.

다음 달이면 올해의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될 것이다. 올해도 우리나라 수상자가 없으면 매년 그랬듯이 ‘과학강국 대한민국’이 그동안 그렇게 투자를 많이 했는데 왜 노벨과학상을 못 받느냐고 할 것이다. 창의성이 결여된 채 목적만 좇는 연구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싹을 만들어 낼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 우리 연구환경은 연구자들에게 주변을 돌아볼 틈도 주지 않고 성과를 내놓으라고 다그치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과학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연구자의 창의성을 높일 수 있는 연구환경 조성이 먼저이다.

(재)부산산업과학혁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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