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불과 100년 전 당뇨병은 무서운 질병이었다. 1형 당뇨병의 경우 진단 후 2주에서 한달 안에 사망하는 병이었다. 이 불치의 병을 더 이상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는 만성질환으로 바꾼 것이 바로 인슐린의 발견이다.
인슐린은 프레데릭 밴팅 (Frederick G. Banting)이라는 젊은 외과의사에 의해 발견되었는데, 1920년 10월 31일 밤 자정께 불현듯 개의 췌장에서 인슐린을 추출해낼 수 있는 방법이 떠올라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이 아이디어를 가지고 캐나다 토론토 대학의 생리학 교실 주임교수인 존 맥클라우드(John J. R. Macleod)를 찾아가 실험을 할 것을 제안하고, 맥클라우드는 그를 지원해주기로 했다. 다음 해인 1921년 맥클라우드는 밴팅이 실험을 할 수 있도록 자신의 생리학 및 생화학 코스 4학년 학부생 찰스 베스트(Charles Best)를 조수로 소개해준다. 이후 또 한 명의 연구자 제임스 콜립(James Collip)을 소개해주기도 한다. 1921년 5월에 시작된 밴팅의 실험은 12월에 드디어 개의 췌장에서 인슐린을 추출하는 데 성공한다. 1922년 1월 레오나드 톰슨(Leonard Thompson)이라는 14세의 소년이 처음으로 인슐린 주사를 맞게 되고, 이 소년은 죽음의 위기에서 살아나 27세에 폐렴으로 사망할 때까지 생존했다.
이후 많은 당뇨병 환자들이 이 인슐린을 통해 죽음 앞에서 삶이 연장되는 기적을 누리게 된다. 인터넷에 검색을 하게 되면, 당시 죽음을 눈 앞에 둔 뼈만 앙상한 어린이들이 인슐린 치료를 받은 후 한 두달 만에 통통하게 살이 오른 사진들을 볼 수 있다. 이 사진들을 보면, 인슐린이 우리의 생존에 얼마나 중요한지, 또 이 인슐린의 발견이 얼마나 위대한 발견인지 알 수 있다.
그리고 밴팅과 베스트 콜립은 이 기술을 미국의 특허를 받은 후 토론토 대학에 1달러에 판매하여 모든 사람들이 이 위대한 발견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어쩌면 인슐린의 발견보다 이 부분이 더 많은 사람들을 구한 위대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위대한 업적을 인정받아 밴팅과 맥클라우드는 1923년 10월 노벨상을 수상하게 된다. 그런데 이후 밴팅과 맥클라우드의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후문이 있다.
그 이유는 밴팅은 맥클라우드보다는 함께 실험하며 고생한 베스트와 콜립이 함께 노벨상을 수상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노벨상 상금의 반을 베스트에게 나누어주었다고 한다. 노벨상을 주는 입장에서는 조수의 역할을 한 대학교 4학년 학생 베스트보다는 맥클라우드의 공이 더 컸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밴팅이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도록 베스트와 콜립을 소개해주었고, 실험실과 펀딩 및 여러 여건을 조성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실험결과를 즉각 권위있는 생리학 학회에 소개해줌으로써 빠르고 강력하게 전파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밴팅의 업적과 생각은 모든 면에 있어서 혁신적이었다. 그 혁신을 통해 100년이 지난 지금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누리고 있다. 1형 당뇨병뿐만 아니라 2형 당뇨병도 당시에는 발병 이후 3년에서 5년 이후 사망하는 병이었으나 지금은 그저 관리만 잘하면 되는 만성질환이 되었다. 밴팅은 이 엄청난 발견을 단돈 1달러에 사회에 환원하고, 또 자신의 노벨상을 함께 고생한 동료에게 나누어 준 것으로 보아, 기존 질서와 권위를 싫어하고 본질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물론 그 가치를 알아봐주고 도와준 맥클라우드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혁신은 어떻게 하면 나 자신 뿐 아니라 남을 이롭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되고, 기존 사회의 권위가 새로운 생각에 대한 유연성을 발휘할 때 열매 맺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진짜 혁신이었는지는 시간이 지나 많은 사람들이 그 혜택을 누릴 때 평가받는 것이 아닐까 한다.
고신대복음병원 내분비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