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의 강을 건너는 일이 험난하다. 강을 건너는 중에 더러는 낙오가 발생한다. 대다수 희생자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그리고 청년이다. 비대면 시대에는 노인과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의 고통도 가중된다. 강을 순풍에 돛을 단 듯이 건너는 이도 있다. 비대면 정보통신 업종이나 일부 수출기업 등이다.
무사히 강을 건넌다 하더라도 젖은 몸을 말릴 수 있을 지가 불투명하다. 아니 더 매서운 엄동설한일 수 있다는 공포가 밀려든다. 백신접종이 예정대로 이뤄지고 이른바 ‘위드 코로나19’가 시작돼도 ‘이전으로의 회복’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강하다. 경제사회분야의 많은 전문가들은 코로나19로 형성된 ‘뉴 노멀’이 구조화될 것으로 본다. 단순히 역병치레가 아니라 사회경제적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는 뜻이다.
‘강을 함께 무사히 건너고 마른 땅을 밟을 준비를 얼마나 잘하느냐’가 관건이다. 그런데 우리 공동체의 대응은 이른바 ‘회색 코뿔소’(gray rhino)의 늪에 빠진 게 아니냐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회색 코뿔소는 명확한 위험이 다가오는 것을 알면서도 두려움 때문에 일부러 무시하는 현상을 뜻하는 용어다. 특히 중앙 정치권과 정부의 대응이 그렇다.
강을 건너는 국민에게 ‘찔끔 지원금’으로 버티라고 한다. 그런데도 경제수장은 ‘곳간 타령’만 한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국회에서 확장재정을 요구하는 여당 의원을 향해 “곳간이 비어간다”고 했다가 하루만에 “재정이 탄탄하다”고 오락가락한다. 부채 증가의 가파른 속도가 부담이지만 견딜만 하다는 것이 사실에 가깝다. 기획재정부가 9일 발표한 자료를 보면 정부는 올들어 7월 말까지 세금 223조 7000억 원을 걷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5조1000억 원 불어났다. 코로나 19 대응 등으로 재정지출이 21조 원 가까이 늘어 재정적자 규모는 57조 원이다. 우리나라의 국가채무비율은 내년 예산안 기준으로 50.2%이다. 지난해 기준 미국 131.2%, 일본 266.2%, 스페인 123% 등과 비교하면 양호한 수준이다.
정치권도 흘러간 레코드 판을 다시 돌린다. 일부 대선 예비후보들은 성장정책을 강조한다. ‘성장없는 분배는 허구’라는 주장은 ‘분배없는 성장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외면한 구호이다. 이명박(MB) 정부의 ‘낙수효과’는 실패로 끝난 바 있다. 수출대기업은 정부의 지원정책으로 번 돈을 투자와 고용을 늘리는 선순환 대신 창고에 유보금으로 쌓아 소득 불평등을 확대하는 악순환으로 귀결됐다. 경제성장의 과실이 대기업과 일부 계층에 집중되는 현상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이 코로나19로 절규하는 국민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실을 ‘회색 코뿔소’로 해석하는 것을 과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코로나19 국면에서 나라는 부자가 되고, 국민은 가난해지는 현상은 전문가들의 예측대로 맞아떨어지고 있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지난 7월 2일 대한민국의 지위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변경했다. 한국은 ‘부자 나라’가 됐다. 그러면 국민도 부자가 됐나. 대부분 ‘가난한 국민’이다.
그래서 정부 정책의 핵심은 국민의 삶을 보듬는 것이어야 한다. 그 첫출발은 어렵고 힘든 국민에 대한 돌봄이어야 한다. 정치권과 정부 일각은 돌봄을 밑 빠진 독에 붓는 복지재정 정도로 비난하지만 국민의 기본적 삶을 챙기고 사회적 일자리를 창출하는 정책이다.
이런 관점에서 부산시가 최근 발표한 ‘부산형 통합돌봄’은 오히려 늦었다는 감이 있다. 2024년까지 5대 분야 22개 과제를 추진하는 이 정책은 부자나라의 정부가 제 역할을 찾은 첫 출발로 평가하고 싶다. 노인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과정에서 일자리가 생긴다. 부산진구에서 시행중인 돌봄정책은 인근 대학과 연계해 청년의 참여도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전북 전주시가 2019년부터 추진 중인 ‘전주형 통합돌봄’을 부산시가 눈여겨 봤으면 한다. 전주형 통합돌봄의 성과는 상상 이상이다. 민·관·의·산·학이 참여해 어르신·장애인·정신질환자의 건강·의료 안정망을 고도화하는 것으로 통합돌봄을 지역재생·사회적 경제와 연계 발전시키는 모델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촘촘한 안전망 구축과 서비스 과정에서 연관 업종이 활성화돼 지역경제까지 활력을 얻고 있다. 전주시민의 70% 이상이 만족과 지지를 표한 정책이다. 선진국이 된 한국의 정부가 진화해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고 평가하고 싶다. 진정한 선진국은 국민이 믿고 기댈 수 있는 정부에서 출발해야 한다. 생존위기에 놓인 국민을 돌보지 않고 실패한 국민에게 재기의 기회를 주지 않는 선진국은 허명일 뿐이다.
서울본부장 kkshon@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