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에서 보호 가치가 높은 생물 종을 흔히 깃대종 또는 지표종이라고 부른다. 1980년대 우리나라는 급속한 산업화의 여파로 전 국토를 가리지 않고 공장이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하천이 오염됐다. 그 결과 식수가 오염되는 등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오염 상태를 사전에 알려주는 ‘경고등’이 필요했는데 이때 소환된 것이 천연기념물 제330호 수달이다. 물고기를 사냥하는 수달이 어느 순간 자취를 감추면 수질도 악화한 것으로 본 것이다. 수달은 하천의 건강성 여부를 말해주는 지표이자 깃대종인 셈이다.
지난 7월 유엔이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격상시키는 결정을 내렸다. 3만2000달러에 이르는 1인당 국민소득은 물론 복지와 국민의식 수준의 향상 등이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코로나19 시대에 힘을 주는 반가운 소식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지난 시절 현장에서 환경과 관련한 취재를 하면서 절감하게 된 선진국의 지표는 따로 있다. 바로 동식물의 천국인 습지(濕地·wetland)다. 선진국들은 오래전부터 습지의 중요성을 깨닫고 최고의 자산으로 관리하고 있다.
24년 전인 1997년 본지의 기획 시리즈 ‘생계계 보고 늪을 살리자’ 취재팀의 일원으로 운 좋게(?) 5개월에 걸쳐 여러 곳의 해외 습지를 찾아 취재한 적이 있다. 우리 사회가 습지의 가치에 막 눈을 떠가던 시기였다. 호주 퀸즐랜드주의 주도인 브리즈번시의 분달습지(갯벌)에서 본 모습은 지금도 생생하다. 지역 환경단체에 소속된 40대 여성이 아동을 상대로 막 건져 올린 어린 꽃게에 막대 자를 들이대며 ‘포획 금지 교육’을 하고 있었다. 당시 영국령이었던 홍콩시는 마이포 습지를 국제환경단체인 세계자연기금(WWF)과 함께 생태 관광지로 탈바꿈시켜 소득을 올리고 있었다. 일본 홋카이도의 쿠시로시는 쿠시로 습지를 활용해 국제 친환경 세미나와 총회를 유치해 수많은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
생태계의 보고인 습지가 2세 교육은 물론 지역 경제 활성화의 버팀목 역할까지 한다는 사실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그 시절 우리나라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기업체 유치’에 목을 매고 있을 뿐 습지 관리에 대한 관념은 희박했다.
또 하나 해외 습지 취재를 다니면서 디테일(세세한 부분)에 주목했다. 아주 작은 부분도 배려하는 습지 관리 기술을 통해 그 나라의 환경 수준까지 가늠할 수 있었다. 월동 철새가 지켜보는 탐방객의 존재에 방해받지 않도록 인공 벽이나 관찰탑을 설치하는 것은 좋은 예다. 구조물 색상도 국방색으로 칠해 주변과 어울리도록 했다. 생태 가이드가 대기 중인 방문자센터에서 예술품처럼 조각된 철새 모형과 모자를 팔아 환경기금으로 재투자했다.
세월이 지나 우리나라도 유명 습지에 공을 많이 들인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경남도와 창원시(주남저수지), 김해시(화포천), 창녕군(우포늪)이 추진하는 낙동강습지생태벨트 사업의 성패에 주목한다. 습지 세 곳과 낙동강을 연결해 인간과 철새와 다양한 동식물이 공존 공생하는 생태계를 만들자는 구상이다. 파이를 키우면 새로운 녹색 경제권을 만들 수 있다고 본다.
우포늪에서는 멸종된 따오기 복원사업이 수년째 이어져 오고, 화포천습지에서도 다음 달께 황새 복원사업이 시작된다. 낙동강 주변 습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는 멸종 위기종 복원 실험은 앞선 선진국에서도 유례가 드물다.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훌륭한 상품이다. 일본 니가타현 사도섬은 따오기 복원 성공으로 지역 농산물이 제값을 받고 불티나게 팔린다. 세상이 변한 것이다. 2023년 10월이면 세계습지총회로 아시아에서 두 번째였던 창원 람사르총회가 열린 지 15년이 된다.
개인적으로 이를 기념해 습지를 보유한 전국 지자체가 참여하는 세미나나 축제가 열렸으면 한다. 낙동강 습지벨트 지자체들이 힘을 합치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최근 유네스코는 순천만 등 4개 갯벌을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했다. 낙동강 생태벨트도 육상습지로서는 처음 세계유산으로 올릴 수 있기를 바라본다. 습지의 가치에 눈떠 선진국의 품격을 높여 나갈 때다.
동부경남취재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