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0여 년 전 석가모니가 남긴 수많은 설법은 화엄경 법화경 금강경 등 경전으로 정리됐다. 후세대에 이르러 이 경전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되었다. 해석방식에 따라 불교는 조계종 천태종 화엄종 원불교 등 다양한 종파로 나뉜다.

2000여 년 전 예수의 설교도 한 권의 바이블로 정리된 후 다양한 해석 방식을 낳았다. 우리는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등의 이름을 단 교회 간판을 거리에서 자주 마주한다. 이처럼 ‘동일한’ 경전에 대한 ‘상이한’ 해석 방식은 ‘종파’나 ‘교파’를 만들어낸다. 해석 방식의 차이에 따른 ‘파당’은 종교사회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며, 갈등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차이를 알고 각자의 존재를 인정한다. 종교학자가 아니라 모르긴 하나 상이한 해석 방식에 대해선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경제학도 마찬가지다. 같은 경전을 다르게 해석하듯이 경제학자들도 같은 경제 현상을 다르게 바라본다. 거기엔 이유가 있다. 생뚱맞게 들리겠지만 경제학은 철학적 기반 위에 서 있다.

경제학이 특별히 관심을 가지는 철학적 질문이 몇 개 있는 데, 대표적인 것이 인간의 ‘본성’에 관한 질문이다. 인간은 이기적인가, 이타적인가? 같은 인간을 앞에 두고 경제학자들은 다르게 본다. 어떤 경제학자들은 인간을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존재라고 믿지만 다른 경제학자들은 이기심과 이타심으로 뒤얽힌 복잡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스님과 목사처럼 경제학자들도 같은 철학적 질문에 서로 다른 답을 내리는 것이다.

같은 철학적 질문에 대해 내린 서로 다른 답에 따라 경제학자들은 서로 갈라지는데 이를 ‘경제학파’라고 부른다. 경제학파는 종교에서 종파나 교파와 같다.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 보는 경제학파를 ‘신고전학파경제학’으로 부르는데, 이는 주류경제학으로 부를 정도로 우리에게 익숙하다. 반면 ‘제도학파경제학’과 ‘케인스경제학’은 인간을 이기심과 이타심의 복합적 존재로 보는데, 이들은 신고전학파경제학과 달리 현재 비주류경제학으로 불린다. 두 학파는 인간의 ‘존재 방식’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답을 내린다.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는가? 주류 신고전학파경제학은 인간이 홀로 살아가는 ‘개인적 존재’라고 이해하는 반면 두 개의 비주류경제학은 서로 얽혀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라고 답한다.

경제학자들은 동일한 철학적 질문들에 대한 이런 상이한 답을 지침으로 삼아 경제 현실을 바라보고, 각자 다른 경제학 모델과 경제 정책을 수립하는데, 이기적 본성과 개인적 존재를 신봉하는 신고전학파경제학자들은 ‘경제 성장’을 정책목표로 설정하고 경쟁과 자유방임을 적절한 정책 수단이라고 믿는다. 반면 복합적 본성과 사회적 존재를 수용하는 제도 및 케인스경제학은 ‘소득 분배’를 정책 목표로 내세우고 협력과 국가개입을 정책수단으로 동원한다. 두 진영을 둘러싸고 전 세계에서 수백만 명의 경제학자들이 토론 중이다.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학술지로 각자의 주장을 개진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신고전학파는 물론 제도 및 케인스경제학 역시 ‘듣보잡’ 경제학이 아니다.

각자는 각국 정부에 탄탄한 경제정책을 제공했다. 미국은 신고전학파경제학의 제안을 받아들여 ‘자유시장경제’를 강화한 반면, 유럽은 제도경제학파와 케인스경제학의 제안을 수용해 ‘복지국가’를 창조해냈다. 어떤 경제학파도 현실에서 실험돼 본 적이 없는 ‘황당한 망상’이 아니다. 특히 서유럽의 복지국가는 비주류경제학의 ‘소득주도성장론’으로 다져졌다. 보수정당이 집권해도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그 뿌리는 깊다.

지난 3월 부산시장 선거 때 국민의힘이 소득주도성장론을 ‘듣보잡’으로 힐난하더니, 지난달에는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족보 없는’ 경제학이라고 조롱했다. 경제학자로서 실소를 금치 못하겠다. 자신들이 듣고 보지 못하면 잡설인가? 무식과 요설이 대중을 오도하는 시대는 이제 막을 내려야 한다. 1960년대까지는 미국에서도 제도 및 케인스경제학이 주류였다.

좋은경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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