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것? 우리 동네 당근밭에서 캔 건데 괜찮지?”라는 지인의 말에 “그 동네 아파트밖에 없던데, 당근밭이 어디 있어?”라고 되묻는다면 시대의 변화에 둔감한 사람이다. 여기서 ‘당근밭’은 지역 밀착형 중고거래 플랫폼인 ‘당근마켓’을 의미한다. 그런데 최근 당근마켓이 ‘잭팟’을 터뜨렸다. 당근마켓은 지난달 1800억 원의 투자유치에 성공하며 국내 16번째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 원 이상인 비상장 벤처기업)’에 올랐다. 그 과정에서 이 기업의 가치는 무려 3조 원으로 평가됐다. 2015년 1월 창업 이후 7년 만의 대박이다.
벤처투자업계가 당근마켓에 주목한 직접적 이유는 급격한 성장세와 확장 가능성이다. 2018년 1월 50만 명이던 이용자수는 올해 1월 1420만 명을 돌파하더니 8월 현재 2100만 명까지 늘었다. 또 미국 영국 캐나다 일본 등 4개국 72개 지역에서 운영중인 글로벌버전 ‘캐롯(Karrot)’의 서비스 지역과 범위도 확대 일로다.
그런데 늘 ‘위기’ ‘소외’ ‘낙후’ 등의 표현에 익숙한 지역민 입장에서 당근마켓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이런 외형적 수치가 아니라 그 이면의 철학과 비전 때문이다. ‘당근’이라는 이름이 ‘당신의 근처’라는 말의 줄임말이듯, 당근마켓은 철저하게 동네와 지역에 기반을 둔 ‘O2O(온라인 투 오프라인) 서비스다. 이른바 ‘슬세권(슬리퍼 신고 걸어갈 수 있는 가까운 지역)’이라고 불리는 ‘로컬 커뮤니티’에 집중한다. 지난해까지는 중고거래에 치중했지만, 올해부터는 ‘슬세권 비즈니스’ 확대에 공을 들이고 있다. 소상공인과 이용자를 연결하고, 이웃끼리 유용한 지역 정보도 공유하는 ‘동네생활’ 서비스를 제공한다. 모바일 앱 상의 ‘동네생활’ 코너에는 ▷동네맛집 ▷동네소식 ▷동네분실센터 등 주제별 게시판도 운영 중이다.
이것이 온라인 비대면 거래에만 집중한 기존 e-커머스 서비스와의 차이점이다. 당근마켓을 통해 동네의 숨어있던 좋은 가게와 주민이 연결되고, 실제 가게 방문이 이어지게 된다. ‘언택트 소비’ 시대에 동네 시장의 가치가 재발견되고, 지역 상권의 활성화를 가져오는 선순환 생태계가 만들어진다. 이런 철학과 비전에는 따뜻한 정이 흐른다. 정확히 40년 전 출간된 이문구 선생의 소설 ‘우리 동네’에서 시골 사람들이 마을회관에 모여 정을 나눴듯, 당근마켓은 21세기 형 ‘우리 동네 마을회관’이라 할 만하다. 특히 ‘우리 동네 당근마켓’이 어쩌면 소멸 위기의 지역사회 회생의 실마리가 될 수도 있겠다는 희망까지 품게 된다. 대박 날만 하다.
이승렬 논설위원 bungs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