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아지 송아지 얼룩 송아지, 엄마소도 얼룩소 엄마 닮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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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스타인 젖소(왼쪽)와 저지 젖소. |
1948년 초등학교 1학년 국정음악교과서에 실린, 박목월 시인이 직접 쓴 ‘얼룩송아지’의 가사다. 어릴 때는 아무 생각 없이 불렀는데 성인이 되면서 갑자기 궁금했다. 한우는 갈색인데 왜 젖소는 얼룩소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의문이 풀린 건 뜻밖에도 일본에서였다.
메이지유신(1868년)을 전후해 일본의 개화파는 경쟁하듯 미국과 유럽으로 갔다. 거기서 그들은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맛봐야 했다. ‘저들의 과학기술을 부지런히 배우고 익히면 우리도 선진국이 되겠구나!’. 이때부터 일본은 탈아입구(脫亞入歐)를 왜치며 맹렬하게 서구문명을 배웠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성인 남성의 평균 신장이 155cm에 불과했던 당시 일본인이 보기에 유럽인과 미국인은 커도 너무 컸다. ‘기술과 문명은 어떻게 해보겠는데 신장은 정말 극복할 방법이 없구나!’. 이때부터 일본의 개화파는 신체 사이즈에 집착했다. 당대가 힘들면 다음 세대라도 키워야 했다. 서구인들은 대체 뭘 먹어서 저렇게 큰가 봤더니, 고기와 우유를 먹고 있었다. 이후 개화파는 고기와 우유먹기를 적극 장려했다.
1200년 동안 육식을 금지하던 일본에서 고기를 먹기 시작했고 낙농업이 탄생했다. 당시 우유를 생산하기 위해 일본에 도입된 소는 네덜란드가 원산지인 얼룩무늬의 홀스타인(Holstein)종과 영국이 원산지인 갈색의 저지(Jersey)종이었다. 저지 소에서 짠 우유가 월등히 맛있지만 생산량은 홀스타인이 많았다. 질보다 양이 우선이었던 당시 일본은 저지 대신 홀스타인을 선택했다. 이때부터 ‘젖소=얼룩소’라는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그렇게 100년이 흘러 일본은 낙농 선진국이 되었다. 서서히 양보다 질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생산량이 적어 포기했던 저지 소를 부활시켰다. 2005년 일본에서 저지 소에서 짠 우유와 그 우유로 만든 요구르트를 처음 먹었던 순간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우유가 이렇게 맛있어도 되는 건가 싶었다.
우리나라 역시 1930년대 이후부터 젖소는 홀스타인으로 통일했다. 우유의 보급 이유와 목적도 일본과 비슷했다. ‘우유를 많이 먹어야 키가 큰다’는 신화를 유포하며 낙농업을 키웠다. 그런데 우유 소비량이 점점 떨어졌다. 출산율이 줄었고 우유를 마시는 양 자체도 줄었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다. 2010년 홀스타인 단일 품종만 강제하던 규정이 바뀌었다. 이후 수정란 형태로 저지 소가 수입되었고 2018년부터 시중에 ‘저지우유’가 판매되기 시작했다.
우유의 맛을 좌우하는 건 유지방과 유단백의 함량이다. 국립축산과학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저지는 홀스타인 대비 하루 우유 생산량이 66%에 불과하다. 하지만 유지방 함량은 5.3%, 유단백은 3.7%로 홀스타인(유지방 4%, 유단백 3.3%)보다 높다. 미미한 차이처럼 보이지만 실제 맛을 보면 저지 우유가 훨씬 진하고 고소하다는 것을 누구나 느낄 수 있다. 심지어 이 차이는 요구르트, 버터, 치즈, 생크림 등 유가공 제품을 만들었을 때 더욱 확연하게 드러난다.
초기 단계라 사육 두수가 적어 아직은 가격이 많이 비싸다. 하지만 혹시라도 기회가 되면 ‘저지우유’ 맛을 한번 보시길 권한다. 박목월 시인께는 대단히 죄송하지만 우유는 역시 얼룩소보다 갈색 소에서 짠 것이 맛있다. 맛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