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도 물러간다는 처서가 지났다. 마침 8월 장맛비가 그 뜨겁던 대지의 열기를 안고 갔는지 한층 선선해졌다. 덕분에 기다렸다는 듯 두꺼운 책을 꺼내 들었다. 한여름에 읽다가 제쳐 두었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3권째.
이 소설은 예전에도 읽다가 흐지부지된 적이 두어 번 있다. 목침 두께만 한 방대한 분량에, 인간 상상력의 최대 걸작이라 평가받을 만큼 심오해, 쉽게 페이지를 넘길 수 없다. 거기다 글자까지 작아 완독하자면 고생깨나 하게 생겼다. 약시에다 한쪽 눈으로만 봐야 하는 나에겐 더더욱.
눈알도 이제 꾀가 생겨, 비교적 얇은 책을 볼 때면 그럭저럭 넘어간다. 하나 제가 버겁다고 할 만한 분량의 책이면 어김없이 성깔을 부린다. 아니나 다를까. ‘잃어버린 시간’을 읽기 시작한 지 이틀째에 책을 덮을 수밖에 없었다. 양쪽 눈에 온통 눈곱이 끼고 눈꺼풀이 뻑뻑해져서다. 털실같이 가느다란 눈곱이 눈을 깜빡일 때마다 눈동자를 따라 움직이니, 제대로 보여야 말이지. 이 눈곱은 닦아내려 해도 잘 떨어지질 않아, 연신 닦아내노라면 눈이 뻘겋게 충혈되기 일쑤다. 안구건조증이 점점 더 심해졌기 때문인데.
이쯤 되면 인공 눈물을 넣어도 그때뿐. 조금만 지나면 또다시 뻑뻑해지며 가느다란 눈곱이 끼기 시작한다. 닦아내려 함부로 눈을 비비면 눈동자가 찌그러질 우려가 있다고 해서, 맘대로 벅벅 문지르지도 못한다. 30대 중반부터 그랬으니 얼추 20년 넘게 달고 사는 고질이다.
그뿐만이랴. 눈 안에선 모기까지 날아다닌다. 피 빠는 모기가 아니라, 모기같이 생긴 검은 선형 두 개가 동공 안에서 제멋대로. 그 모습이 마치 모기가 날아다니는 것 같아 비문증(飛蚊症)이라 했던가.
안과 전문의 설명은 그랬다. 망막 안에 계란 흰자와 젤리를 섞어놓은 것 같은 말랑말랑한 물질이 있는데, 그곳에 어떤 이유로 흠이 나면 모기 닮은 검은 선형이 생기고, 그게 동공이 움직일 때마다 날아다니는 것처럼 보인다나. 이것 역시 20년 넘게 달고 사는 고질이다. 가시처럼 빼낼 수도 없고 수술로도 어찌할 수 없는.
그중 한 가지만 있어도 눈이 갑갑한데, 동공 안에선 모기가 날고 바깥쪽으론 눈곱이 끼니, 그 두꺼운 책 읽기가 가능키나 할까? 뾰족한 수가 생길 리는 만무한 것. 콘택트렌즈를 빼고 드러누워 쉬는데, 몇 년 전 택시 운전사가 했던 유머가 떠올라 피식 웃었다.
7월 말이라 몹시도 더운 날, 고향 친구들과 함께 그 택시를 탔다. 땀을 뻘뻘 흘리며 탄 데다 비문증 때문에 앞을 보기 어려워, 이 고질에 대해서 “아 참, 죽겠네!”하고 제풀에 화딱지를 냈다. 같이 탄 친구들도 안과 치료 어쩌고 하는데, 가만 듣고 있던 기사분이 한마디 했다. “아 그건, 처서 때까지 참으면 안되능교? 처서 지나면 모기 턱도 떨어진다는데, 그놈들도 어디로 안가겠능교?”
기사분 말대로 되면 얼마나 좋을까만, 그때는 한바탕 웃음으로 순간의 불편이라도 넘겼다 치고. 그럼 처서가 됐는데 방 안의 모기 턱이라도 떨어졌나,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한밤 책상에 앉아 있으면 얼마 안 있어 장딴지를 요절내놓곤 한다. 어두운 곳이라 모기향을 피워둬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나중엔 내가 눈이 메워 더 미칠 지경이 되고 만다. 약까지 뿌려도 소용없어 ‘아, 이놈들을 딱!’ 신경질적으로 전자 모기 채를 갖다 대면 한두 놈은 따닥, 죽지만 그래도 여전하다.
피 빨아 먹는 모기야 약으로든 모기 채로든 잡는 방법이 있고, 그도 아니면 모기장 안으로 피신하는 수가 있다만. 눈 안에서 날아다니는 모기는 당최 방법이 없으니, 내 눈을 달랠 수밖에. 그간 못 볼일 보랴, 같잖은 글 보랴, 혹사했던 만큼.
어쩌면 보는 눈보다 감은 눈이 나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기에는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잃어버린 시간은 눈으로 본다고 찾아지는 것도 아니고, ‘잃어버린 시간’ 책을 읽는다고 되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니므로. 그렇다면 눈을 감고 침잠해 찾는 게 제일 아니겠는가. 이젠 보이는 것에 너무 휘둘리지 말고 내 안에서 찾으라는, 나이깨나 먹은 몸의 가르침이라 여기고.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