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도쿄올림픽이 얼마 전 끝났다. 우리 선수들의 선전은 코로나19 장기화로 지친 국민에게 큰 힘과 용기가 됐다.
코로나19로 1년 연기 끝에 어렵사리 열린 이번 올림픽에서는 당찬 MZ세대(밀레니얼과 Z세대의 합성어로 1980~2000년대생) 선수들의 활약이 화제를 모았다. 그중 최고 관심을 끈 이는 양궁 3관왕을 차지한 안산이 아닐까 싶다. 안산은 뛰어난 실력으로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일부 네티즌들이 그를 급진 페미니스트라고 비난하며 사이버테러를 저지르면서 남성혐오 대 여성 혐오 문제로 비화됐다.
이번 사건의 발단은 남초 커뮤니티에서 일부 회원들이 안 선수가 과거 ‘웅앵웅’이라는 급진 페미니스트가 쓰는 단어를 썼다고 주장한 것이다. ‘웅앵웅’은 일부 커뮤니티에서 “남성들이 말할 때 논리력이 떨어진다”는 의미로 사용해 대표적 남혐 단어로 알려져 있다.
안 선수가 여성 팬이 많은 걸그룹 ‘마마무’ 팬이니 페미니스트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이들은 대한체육회에 수차례 전화를 걸거나 “금메달을 박탈해달라”고 청원했다. 안 선수의 ‘쇼트커트’ 스타일을 두고도 페미니스트의 한 증거라고 했다.
올림픽이 끝났지만 안 선수에 대해 비난을 멈추지 않는 사람들이 생기자 안 선수는 지난 8일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통해 “제 관련으로 가족, 주변인들에게는 연락하지 말아주세요”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외신들도 안 선수를 둘러싼 급진 페미니스트 논란을 두고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로라 비커 BBC 한국 특파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머리 모양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번 일은 자신들의 이상에 들어맞지 않는 여성을 공격하는 소수의 목소리이다. 한국이 양성평등 문제와 사상 최저 수준의 출생률을 해결하려면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뤄야 한다”며 “한국에서 ‘페미니즘’은 더러운 단어가 되어 버렸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의 젠더 갈등이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주고 있다. 안 선수가 실제 페미니스트라고 해도 금메달을 박탈할 만큼 문제가 되는지 의문이다. 결국 젠더 갈등은 이념·지역·세대 갈등에 이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언제 또 반복해서 일어날지 모르는 일이기도 하다.
지난 5월에는 ‘GS25 남혐포스터 논란’이 발생했다. 당시에도 남초 커뮤니티에서 GS25의 포스터에 나온 엄지·집게 손가락을 모은 모양이 급진 페미니스트들이 쓰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일부에서 GS25에 대해 불매운동을 벌이자 회사는 포스터를 수정하고 공식사과문을 발표했다. 그런데 ‘안산 사건’을 계기로 지난 5월 GS25의 사과가 부당했다며 일부 여성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일부 네티즌이 기업홍보물에서 유사한 손모양을 찾아 ‘남혐 기업’으로 낙인찍다 보니 기업의 입장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이처럼 젠더갈등이 심화된 것은 지난 4.7 재·보권 선거라고 보는 이들이 많다. 재·보궐선거에서 20대 남성 유권자 72.5%가 오세훈 국민의 힘 서울시장 후보를 지지했다는 출구조사 결과에 대해 정치권이 ‘민주당의 여성중심 정책에 대한 반발’이라는 분석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이후 정치권은 이대남(20대 남성)을 달래기 위해 군경력 반영, 여성가족부 폐지 공론화 등 각종 정책을 내놓고 있다.
결국 정치권에서 20대 남녀를 구분 짓고 정치적으로 이용하면서 젠더갈등을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안산 선수의 ‘쇼트커트’에 대해서도 가십처럼 넘어갈 수 있는 문제였지만 국민의 힘 양준우 대변인이 페이스북에 “안 선수가 남혐 단어로 지목된 용어를 사용했다”는 내용을 썼다. 류효정 정의당 의원과 연예인 구혜선은 여성을 지지한다며 ‘쇼트커트 인증샷’을 올리기도 했다.
이런 젠더갈등을 부추기는데 언론도 한몫을 하고 있다. GS25 사건 이후 비판없이 논란만 전달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20대 남성의 분노는 우리 사회에 대한 불만, 특히 어려워진 취업상황이 원인이 될 수 있다. 여성 취업자가 많은 사회복지, 서비스업 일자리가 늘면서 상대적으로 남성들은 박탈감을 느낄 수 있다.
결국 정치권은 20대의 성별 갈등을 이용할 것이 아니라 사회 화합을 꾀해야 한다. 청년들을 둘러싼 일자리 주거 빚 등 모두가 문제인 만큼 얽힌 실타래를 풀듯 종합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인터넷상에서도 무분별하게 분출되는 편가르기도 사라져야 하고 언론도 중계식 보도를 지양해야 한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우리 모두가 지쳐가면서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고 어떤 식으로 폭발할지 모른다. 지금은 상식과 이해, 포용이 절실한 때라는 점을 잊지 말자.
편집국 부국장 ejle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