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한 지원사업의 심사를 받으러 갔을 때 흥미로운 질문을 받았다. 우리가 하는 일을 왜 꼭 부산에서 해야 하느냐는 지적이었다. 부산에서 해야만 하는 이유가 없지 않느냐는 취지였다. 그때 나는 입 끝에 맴돌던 말을 삼키고 적당한 말을 찾아서 대답했던 것 같다. 뻔하지만 부산은 유래가 깊은 영화의 도시이지만 배급 인프라는 없다 등등 납득시키기 위한 답변들. 무엇이 알맞은 답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말은 답변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질문은 내게는 마치 ‘왜 사느냐’는 정도의 질문과 유사하게 들렸다. 비단 이런 심사뿐만 아니라 부산에서 머무는 청년들은 무슨 일을 하고 있든지 왜 이곳에 있느냐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최근 화두가 되는 ‘로컬 크리에이터’라는 개념도 앞선 질문과 맥을 같이 한다. 단순히 생각했을 때는 지역에서 일하는 창작자 혹은 기획자를 떠올리기 쉽지만, 창업진흥원이 내리는 정의는 꽤 단호하다. ‘로컬 크리에이터’의 정의와 요건을 ‘지역가치 창업가로서 지역의 자연과 문화 특성을 소재로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결합해 사업적 가치를 창출하는 스타트업’으로 규정한다. 특정 지역을 주제로 한 매거진이나 지역의 환경을 활용한 복합문화공간이 대표적이다. 다시 말해 씨네소파는 로컬에 있고 부산 청년들이 모여 일하지만 ‘로컬 크리에이터’에는 속할 수 없다. ‘영화 배급’은 부산이 아니더라도 어디서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언뜻 합리적이고, 그렇기에 우리는 이 지역에서 우리도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끊임없이 증명해내야만 했다.

어떤 현상을 세대와 연결 짓는 것을 선호하지는 않지만, 분명 MZ세대 삶의 방식은 이전과는 많이 다르다. 미래를 생각하기보다 지금 있는 현재를 즐기는 문화로 표현되기도 하고 때로는 열정 없음으로 대변되어 눈엣가시가 되기도 하는 이 세대와 로컬은 어떻게 링크될 수 있을까. 어쩌면 YOLO(You Only Live Once, 현재 행복을 가장 중시하고 소비하는 태도), 워라밸(Work-life balance, 일과 삶의 균형)은 삶의 목적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다양해진 것은 아닐까. 일과 직업뿐만 아니라 가족이나 취미 등 자신의 삶을 지탱하는 요소가 다채로울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도 되는 문화가 생겼다는 생각이 든다. 마찬가지로 한 청년이 로컬에서 사는 이유 역시 단편적이지 않다. 최근 도쿄올림픽을 통해 이슈가 되었던, 젊은 선수들의 마음가짐과 우리가 보여준 응원문화처럼, 개념은 변한다.

그러니까 나는 그때 그렇게 되묻고 싶었다. 내가 살고 싶은 곳에서 원하는 일을 하려는 것에 이유가 필요하느냐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곳, 원하는 문화나 자연이 있는 곳, 그래서 살고 싶은 곳. 우리에게는 이것이 비즈니스에 활용할 수 있는 지역자원이 있는 것보다도 더 명료한 이유라고 말이다.

그리고 여기 또 다른 로컬기업이 있다. ‘영화사 눈(NOON)’은 2017년에 의기투합한 또래 친구 5명이 시작한 영화 제작사이다. 영화를 전공한 사람은 없었지만, 영화의 전당 아카데미 워크숍에 참여해 영화를 배웠고 그 이후로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지속해 총 14편의 장단편영화를 선보였다. 이들의 첫 장편영화인 ‘영화의 거리’를 연출한 김민근 감독은 단편 ‘엄마 풍경 집(2016)’으로 부산독립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으며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영화의 거리’는 그런 부산 청년의 이야기를 담아낸 작품이다. 영화사 눈이 만들고 씨네소파가 배급을 확정한 ‘영화의 거리’는 헤어진 연인이 일 때문에 다시 만나는 로맨스를 그렸다. 배급할 수 있었던 것도 로컬의 힘이 컸다. ‘매년 한 편의 부산 영화를 개봉하자’는 취지로 올해부터 마련된 (재)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와 (재)영화의전당의 지원을 받았다. 올가을에는 두 로컬 기업이 소개하는 부산의 매력을 느껴보면 좋겠다. 우리가 사는 곳이 곧 우리의 거리다.

씨네소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