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이 덮친 지난해 3월 말 전남 광양과 충북 청주시 직원들이 전북 전주시를 급히 찾았다. 전주시가 같은 해 3월 9일 재난기본소득 지급 방침을 밝힌 직후였다. 전주발 재난기본소득은 이름은 조금씩 다르지만 중앙정부를 비롯한 전국 지방정부가 코로나19 팬데믹을 극복하는 주요 정책수단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이 시기 중앙정부는 전국적으로 발생하는 코로나 19 환자 집계와 확산방지대책을 마련하는 데 골몰했다. 중앙정부는 시민의 실질적 삶의 고통을 돌아볼 여력이 없었다. 결과적으로 지방정부가 시민이 살고 있는 현장에서 건져 올린 정책이었다.
드라이브 스루(Drive-thru)(고양시), 기초정부 역학조사관 채용(수원시), 착한 임대료, 재난기본소득, 전주형 통합돌봄(전주시) 등 지방정부의 정책이 빛을 발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한국이 자랑하는 정책들이다. 전 세계적으로 보편화된 드라이브 스루를 비롯한 이들 정책은 한국이 코로나 19에 대응하는 우수사례로 꼽힌다. 모두 지방정부에서 시작해 중앙정부에 이어 세계가 따라하거나 주목한 정책이다. 지방정부의 강점은 ‘현장’이다.
코로나19 국면에서 국가가 돌아왔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정부의 권능이 확대일로이다. 정부는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국민의 정보와 이동을 포함한 생활 전반을 통제한다. 코로나19 초기 생소했던 집합금지나 영업금지를 강제하는 행정명령이 일상용어가 됐다. 여기에서 정부는 중앙정부이다. 지방정부의 역할과 기능을 확대하는데 대해 정치권의 의미 있는 논의를 찾아보기 힘들다. 대선 국면에서 단골 메뉴인 ‘지방분권형 개헌론’조차 이번에는 실종됐다. 중앙정부나 정치권은 오히려 지방정부의 결정에 대해 폄훼하거나 발목을 잡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표적으로 5차 재난지원금 지급을 둘러싼 논란이다. 중앙정부는 하위 88% 국민을 대상으로 1인당 25만 원씩을 지원하기로 했다. 경기도가 도민 100%에게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겠다고 하자 중앙정부와 정치권은 ‘정부의 방침을 무력화한다’거나, ‘다른 지역과 역차별이 우려된다’며 들고 일어났다. 지방정부를 중앙정부의 하급기관 정도로 인식하는 수준에 머문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중앙정부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기본적으로 국가가 지원할 수 있는 수준과 방식으로 정책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같은 논리로 지방정부가 해당 지역이 처한 환경과 조건에 맞게 지원 수준과 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도 중앙정부의 결정을 그대로 따르지 않는다고 윽박지르면 200개가 넘는 지방정부를 따로 둘 이유가 없어진다.
중앙정부와 정치권의 논란에도 경기도와 기초정부의 합의로 도민 100%에게 재난지원금 지급이 이뤄질 전망이다. 경남 거제시는 도민 100% 재난지원금 지급을 경남도에 건의했다. 경남 의령군과 경북 의성·예천군, 전남 신안군은 아예 자체적으로 저소득층에 1인당 10만 원을 추가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이미 지방정부는 각 권역에 맞는 차별화된 정책으로 중앙정부의 정책을 보완하고 있다.
코로나19가 잦아들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4차 대유행은 갈수록 기승이다. ‘굵고 짧게’ 코로나19를 잡겠다는 정부의 약속은 희망사항일 뿐이다. 국민의 불안과 고통은 임계점의 언저리에 도달했다. 많은 전문가는 언제 일지 모르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난 후에도 이전으로 회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예측한다. 팬데믹 상황에서 비접촉 업무 확대를 비롯한 일상의 변화에서부터 자영업의 몰락에서 보듯 경제·사회적 변화도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한다고 전망한다.
실제로 통계청은 최근 우리나라 전체 취업자 중 자영업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 6월 기준으로 20.2%라고 발표했다. 이는 1982년 7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시작된 재택근무 등 비접촉 근무 형태도 되돌리기 어려운 상황으로 가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여론조사 기관 입소스에 의뢰해 세계 29개국 근로자 1만2500명을 상대로 지난달 실시한 설문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66%는 팬데믹 이후에도 재택근무 등 더 유연한 근무환경이 지속돼야 한다고 응답했다. WEF는 “팬데믹 이후에도 근무 형태가 (과거로 돌아가지 않고) 영구적으로 바뀔 것”으로 예측했다.
코로나19는 꼬리가 길고(롱테일), 이 과정에서 업종이나 개인의 양극화(K자형 회복)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측이 불행히도 맞아 떨어지고 있다. 코로나 19 극복 과정과 이후에 마주해야 할 모든 짐을 중앙정부와 정치권이 질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의 하부기관이라는 인식으로는 풀기 어려운 숙제이다. 현장에 서 있는 지방정부에게 더 큰 권능을 부여해야 한다. 짐은 나눠질 수록 가벼워지는 법이다.
서울본부장 kkshon@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