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또 휴대전화를 바꿨다. 아직 충분히 잘 쓸 수 있는데 말이다. 어디 탈이 난 것도 아니고 늘 쓰는 앱이나 씀씀이에 문제가 생긴 것도 아니다. 전화기 액정이 깨졌거나 긁혀 싫증이 난 건 더더욱 아니다. 앞으로도 한참 더 쓸 수 있는 말짱한 전화기를 버렸다. 왜?
약정기간이 지나자 대리점 젊은이가 수시로 전화를 해댔다. 딱 잘라 거절했어야 하는데 모질지 못한 내가 다정하게 응대한 것이 문제였다. 꼭 방문해 주시라, 언제 오실 거냐, 이번 일요일 기다리고 있겠다, 가능한 시간을 말씀해 주시면 좋겠다. 이 집요한 성화에 내가 그만 넘어간 것이다.
최신 전화기를 거저 준다는 것도 마뜩잖다. 다만 오래전 내가 영업하러 나섰을 때의 막막함, 종일 싸돌아다녔지만 아무 성과도 없이 공장으로 돌아올 때의 암담함, 우리 아이들도 저렇게 전화기 아닌 또 다른 무언가를 팔고 있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다, 전화기 하나 팔아 실적을 쌓고 벌이하는 고단한 젊은이들이 마음에 끼어 그까짓 것 하나 갈아주면 어때? 해서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자본은 무섭다. 용케 약한 틈을 찾아 비집고 쪼아서 기어코 사달을 내고야 만다.
그런데 이 전화기라는 요물이 그냥 뚝딱 떨어지는가? 전화기 하나 만들기까지 얼마나 많은 오염물질을, 또 탄소를 배출하고 생태계를 교란하는가. 자본은 이 모든 실상과 아픔을 화려하게 치장한 포장지로 감싸 우리 눈을 멀게 하고 판단력을 마비시킨다. 경제 전문가라는 이는 아직도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우리의 삶을 더 풍족하게 만들 거라 떠벌인다.
어릴 적 3년 치 용돈을 모아 어렵게 산 무선자동차는 고장이 나도 어떻게든 고쳐 오래 갖고 놀았다. 지금 말도 안 되게 싼 중국산 제품이 쉽게 가져다 주는 행복은 그저 가볍고 금방 쓰레기가 되어 버려진다. 또 새 걸 사면 되니까 애착도 없다. 값이 싼 만큼 내일의 폐기물을 사는 셈이다.
안타깝지만 나는 지금 지구 생명체의 그물망이 점점 더 가파르게 망가지고 있는 여섯 번째 대량 절멸 사태에 가담하고 있다. 운석 충돌로 인한 공룡의 멸종을 제외한 나머지 네 번의 대량 절멸은 모두 온실가스로 인한 기후변화가 주된 원인이었다. 이제 날이 갈수록 기후 위기를 실감하는 세상에 있다. 조짐이 예사롭지 않아 불길함을 더한다. 1000년 만의 대홍수를 불러온 서유럽 폭우, 살인적 폭염 속 미국 서부지역 산불 등 세계 곳곳에서 점점 강도를 더하는 극한 기상 현상은 모두 온실가스로 인해 촉발된 기후변화 때문이다.
이제야 겨우 기후변화의 직격탄을 실감하는지 모르지만, 여기저기 들고나오는 ‘탄소 제로’ 대책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기가 막힌다. 딱 잘라 말하면 눈속임이고 허망하기 그지없다. 오발탄인가? 진심이 담긴 참회라면 우리의 경제 방식 모든 걸 통째 바꿔야 한다. 어쩌면 전기 없이 살던 생활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람은 자신의 눈앞에서 펼쳐지는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경제적 어려움이 우선이라는 이유로 목적지 없이 하늘을 떠돌다 돌아오는 무착륙 비행이라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는 세상이지 않은가. 면세품 구매를 미끼로 말이다. 불과 몇 분의 우주여행을 위해 로켓이 내뿜는 온실가스로 인한 고통은 우주여행 꿈도 못 꾸는 많은 생명체가 치른다. 철없는 부자들의 놀음에 왜 아무 죄 없는 목숨이 위협받으며 시달려야 하는가. 우리는 지구인이다. 이 고마운 지구를 버리고 어디로 간다고? 과도한 인구와 천연자원의 고갈로 인한 피로, 쓸데없이 복잡해진 인간 사회는 생존에 필수적이지 않은 일에 에너지를 낭비한다. 제정신이 아니다.
사람의 숫자와 수명이 늘어날수록 대지와 물과 공기에 미치는 영향도 당연히 커진다. 현재 지구상에는 모든 야생 포유류를 다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수의 사람이 살고 있다. 우리 모두의 생태계를 위해서라면 인구가 더 줄어야 하는데 인구감소로 경제가 망가질 거라고 깨춤을 춘다. 난데없는 반려견, 반려묘의 증가가 어떤 문제를 불러오는지, 또 음식물 배달로 인해 늘어난 오토바이 배기가스는 기후변화와 상관없는가?
권력을 갖고 노는 게 자본이다. 순진하게도 탄소 제로가 가능할 거라 생각하시나? 조금 오래 산다면 이 천국이 화탕지옥으로 변하는 과정을 보게 될 거다. 아마도.
전 생명그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