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경영컨설턴트 오마에 겐이치는 2001년 펴낸 ‘보이지 않는 대륙(The Invisible Continent)’이라는 저서에서 “정보통신의 급속한 발달로 세상은 종래의 국가 간 거래 중심의 규범적 경제구조라는 구대륙과 결별하고 불확실성이 높은 글로벌 차원의 신대륙으로 옮아갈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 후 그의 예언대로 아마존 애플 페이스북 구글과 같은 새로운 형태의 글로벌 플랫폼 사업자들이 속속 등장하더니 세상을 완전히 신대륙으로 이동시켜버렸다. 정보통신의 발달이 우리를 새로운 대륙으로 옮아가게 했다면, 작금의 팬데믹은 과연 우리를 어떤 신대륙으로 인도할 것인가. 이에 대한 실마리는 코로나가 가지고 온 우리 삶의 변화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사람들 마음에 여유가 없어졌다. 1년 넘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통제와 제한된 환경 속에서 살다보니 인내에 한계가 오고 있다. 외부와의 유일한 ‘안전’ 통로인 인터넷은 욕설과 혐오로 만신창이가 된지 오래다. 자신과 조금만 의견이 맞지 않으면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극한 표현으로 무차별 공격을 가한다. 길가다가 자신을 쳐다봤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생면부지의 노인을 향해 끔찍한 폭행을 저지르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다.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비좁은 비행기 안에서의 사소한 다툼이 큰 폭력으로 이어지는가 하면, 코로나의 발생지라며 아시아계에 테러를 가하는 혐오범죄가 심각하다.
사람 만나는 것을 꺼리게 되었다. 대면보다는 비대면을 선호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학생들은 편리하다는 이유로 온라인 수업을 요구하고 있고, 재택근무에 습관을 들인 직장인들이 출근을 거부하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더 이상 새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세계적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의 데이비드 솔로몬 CEO가 이러한 현상을 보다 못해 “사무실 근무를 강제하겠다”는 발언을 했을 정도로 사회 분위기가 변했다.
자신의 물품이 아니면 위생을 의심하는 습관이 생겼다. 혹여라도 악수를 하게 되면 곧바로 상대 앞에서 소독제로 손을 닦는 ‘결례’를 범하기도 한다. 지하철에서 손잡이는 되도록 잡지 않으려 하고, 문을 열 때도 어깨를 사용하기도 한다. 외식을 할 때면 자신이 가지고 온 위생용품으로 수저와 식탁을 다시 소독하는 모습도 눈에 띈다. 위생철저는 좋으나 잘못하다가는 남을 불신하는 풍조로 발전할까 걱정이다.
사람들이 점점 자기 중심적이고 내부 지향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그러다보니, 개인 차원에서는 극단적인 이기주의가, 국가 차원에서는 과잉 민족주의가 판을 친다.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미중관계와 사상최악으로 곤두박질하고 있는 한일관계를 보더라도 도무지 상식적이지 않다. 개인이든 국가든 시야가 좁아지면 갈등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세상이 이렇다보니 ‘도피처’를 찾아 나서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조금 생뚱맞은 해석이긴하지만, 최근 영국의 리처드 브랜슨과 미국의 제프 베이조스와 같은 억만장자들이 우주여행길에 나선 것은 멀지 않은 장래에 문제 많은 지구를 탈출해 화성과 같은 다른 행성으로 가서 살아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말하는 호사가들도 있다. 또한 요즘 화두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메타버스(metaverse)’이다. 현실세계에서 초월적 가상현실로 삶의 무대를 옮기겠다는 구상이다. 가상현실로 이동하게 되면, 사람을 직접 만날 필요도 없고, 위생에 민감할 필요도 없다. 다양한 가상공간으로 옮아 다니면서 마음의 여유를 찾아보려는 시도도 일어날 것이다. 그곳은 국가 간 마찰도 없는 곳이다. 이렇듯 코로나는 세상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신대륙으로의 이동을 재촉하고 있다.
그러면 부산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겨냥해 어떤 신대륙을 찾아 나서고 있는 것 일까? 앞서 언급한 코로나 현상에서 해답을 찾는다면, 자연과 어우러진 풍부한 문화 콘텐츠로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곳, 사람과 사람이 만나기 최적인 곳, 최고의 위생이 보장되는 곳, 포용적이고 넉넉함이 넘치는 국제적인 곳으로 거듭나는데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이러한 환경이 구현되기 위해 필요한 다양한 산업을 최우선적으로 육성하는 전략이 필요해 보인다.
요즘 부산뉴스를 보면 오로지 가덕신공항과 2030 월드엑스포 유치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물론 이 두 사업은 부산시민의 숙원사업이고 그래서 반드시 이루어 내어야하는 과제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코로나 이전부터 있어 왔던 구대륙적 담론에만 마냥 함몰되어 있을 수는 없다. 아직은 짙은 해무로 잘 보이지 않지만 꼭 가야할 부산의 신대륙을 정확히 찾아 나서야 한다. 안개가 걷혀서야 비로소 허둥대기 시작하면 이미 신대륙은 저만치 멀어져 있을 것이다.
동서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