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주군 언양읍 대곡리의 태화강 상류인 대곡천 중류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반구대 암각화가 위치하고 있다. 반구대(盤龜臺)는 거북이가 엎드린 형상의 절벽을 의미하며, 절벽에는 다양한 해양 및 육상 동물의 모습을 비롯해 사람과 배, 연장 등 300여점의 그림이 새겨져 있다. 가장 많이 관찰되는 동물은 고래와 사슴, 호랑이 순이며, 놀라운 점은 단순한 동물그림이 아니라 각 동물의 생태와 행동양식, 사냥방법 등이 정밀하게 표현되어 있다는 것이다.
반구대에서는 면새김과 선새김 기법이 함께 사용되었다. 면새김 방법은 그림의 윤곽을 새긴 후 내부를 쪼거나 긁어내는 방법이고, 선새김 방법은 윤곽이나 동물의 특징을 선이나 점으로 새기는 방법이다. 면새김과 선새김 방법은 각각 신석기와 청동기 시대의 방법으로 알려져 있으며, 반구대 암각화에서는 면새김 위에 선새김이 덧새겨졌기 때문에 고고학 분야에서는 신석기에서 청동기 시대에 걸쳐 그려졌다고 추정한다. 반구대 암각화는 선사인의 생활상을 유추할 수 있는 세계적 수준의 암각화로 평가되어 1995년 국보 제285호로 지정되었다.
하지만 반구대 암각화는 고고학 분야에서만 가치가 높은 것은 아니며, 지질학 분야에서도 매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핵심은 암각화에 새겨진 고래 그림이 해양동물 중 75%에 달할 정도로 비중이 높고, 여러 종류 고래의 특징을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고래를 직접 가까운 곳에서 관찰하고 사냥했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과거 암각화를 만든 시기에는 대곡천까지 고래가 들어왔다는 것을 시사한다. 현재 반구대 지역이 해안으로부터 25 km 정도 떨어진 내륙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암각화는 해수면이 높았던 시기를 지시하는 명확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지질학 분야에서도 여러 연구를 통해 따뜻해서 해수면이 높았던 홀로세 기후최적기(Holocene climatic optimum)에 해당하는 6000~7000년 전에 암각화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반구대 지역은 최근의 기후변화 기록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반구대를 구성하고 있는 암석은 대구층이라고 하는 중생대 백악기에 형성된 퇴적암이며, 암각화 근처에서 공룡(용각류와 조각류)과 익룡 발자국 화석이 산출되기 때문에 중생대에서부터 제4기까지의 고환경과 고기후, 고생태 기록을 보존하고 있는 매우 중요한 지질유산이다.
반구대 암각화는 천전리 각석(국보 제147호)과 함께 ‘대곡천 암각화군’이라는 명칭으로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등록되었고, 문화재청에서는 지난 2월 대곡천 암각화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 우선등재 대상으로 선정했다. 울산시는 내년 4월 등재신청 후보 신청을 시작으로 2023년 7월 등재신청 대상 선정, 2024년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평가를 거쳐 2025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유네스코 세계유산은 총 1121개소이며, 이 중에서 문화유산이 869개소, 자연유산이 213개소, 복합유산이 39개소이다. 한국의 경우 세계유산은 총 14개소가 있는데 문화유산이 13개소, 자연유산이 1곳(제주도)이며 복합유산으로 등재된 곳은 아직 없다. 세계복합유산은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의 조건을 동시에 만족시켜야 하기 때문에 가장 등재되기 어렵고 숫자도 적다.
대곡천 암각화군은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각석이 문화유산의 조건을 갖추고 있고, 천전리와 대곡리의 공룡 및 익룡 발자국 화석과 제4기의 고기후 변동 기록 등이 자연유산의 조건을 만족하기 때문에 한국에서 세계복합유산이 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곳이다. 최근 일부 전문가들은 대곡천 암각화군의 복합유산 등재 가능성이 매우 낮은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는 지질학적인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에 대한 이해의 부족 때문으로 보인다. 균형 있는 검토를 통해 대곡천 암각화군이 국내 최초의 세계복합유산으로 등재되기를 바란다.
부산대 지질환경과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