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펼쳐진 이색 장면은 지금도 많은 이들의 기억에 남아있을 것이다. 고 노회찬 전 정의당 의원이 벌인 퍼포먼스다. 당시 그는 바닥에 신문지 2장 반을 길게 붙인 패널을 깔고 거기에 드러누웠다. 신문지 면적은 정확하게 1.06㎡(약 0.3평)로 이는 서울구치소의 수용자 1인당 가용면적이다. 그가 이런 퍼포먼스를 벌인 이유는 수감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자신의 열악한 수용상태를 두고 유엔기구에 인권침해로 제소한다고 한 데 대한 반박이었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의 구치소 내 수용면적은 10.08㎡로 인권침해로 제소할 사람은 오히려 일반 수용자들이라고 그는 비판했다.
이 퍼포먼스는 박 전 대통령 주장의 부당함은 물론 교도소나 구치소 재소자의 열악한 환경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처럼 정치 퍼포먼스나 이벤트는 유용한 측면이 적지 않다. 국민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수면 아래 있던 문제를 이슈화해 정치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인 것이다. 물론 때론 억지스럽고 속이 뻔히 보이는 작위적인 유사품(?)들이 횡행하는 부작용도 적지는 않다. 이 때문에 정치인들의 이색 퍼포먼스가 노 전 의원 경우처럼 폭 넓은 공감을 얻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최근에는 류호정 정의당 의원의 기자회견 퍼포먼스가 입길에 오르내리고 있다. 류 의원은 지난 16일 국회 본관 앞에서 타투유니온 조합원 등과 함께 타투업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문제는 등에 새긴 타투 스티커가 훤히 드러난 보라색 드레스 차림의 파격적인 장면이었다. 기자회견에서 그는 현재 의료진만 가능한 타투이스트(문신사) 면허 발급 요건 등 규정이 시대착오적이라며 타투를 합법화하는 타투업법 제정을 촉구했다. 20대 여성 정치인의 파격 기자회견 장면에 부정적인 시선이 없을 수 없다. “국회가 패션쇼장인가” “국회의원의 품위와는 맞지 않는 옷차림이다” 등등 비난도 쏟아졌다.
그러나 류 의원은 당당했다. “누군가는 제게 ‘그런 거 하라고 국회의원 있는 게 아닐 텐데’라고 훈계하지만, 이런 거 하라고 국회의원 있는 거 맞다”고 받아쳤다. 실제 그가 촉구한 타투업법은 그간 여야 거대 정당도 발의했지만 매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해묵은 사안이다. 류 의원을 향해 쏟아진 부정적인 시선도 그의 이색적인 기자회견 모습에 한정됐을 뿐, 타투업법 자체에 대한 적극적인 반대는 아니었다. 여기서 타투업법의 옳고 그름을 따질 일은 아니다. 중요한 건 류 의원의 문제 제기로 이 사안이 공론화됐다는 점이다. 불합리한 현실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마냥 덮어둘 수만은 없는 노릇이라면 누군가는 총대를 메야 한다. 류 의원은 이를 위해 파격적인 모습을 연출했을 뿐이고, 그게 정치의 역할인 것이다.
국회의원 개인이 아니라 이준석 대표의 공약으로 국민의힘 당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실험도 눈길을 끌고 있다. 4명의 대변인 선출을 위한 토론배틀 ‘나는 국대다(국민의힘 대변인이다)’엔 564명의 지원자가 몰려 141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지원자 면면도 다양하다. 연예인부터 취업준비생, 고교생까지 말 그대로 열린 기회의 장이다. 그러다 보니 흥행에만 관심을 둔 보여주기 쇼가 아니냐는 등의 비난도 나온다. 일리가 없진 않다. 공정이라는 이름 아래 지나치게 능력주의를 부추긴다는 측면이 없지 않아서다. 이렇게 뽑힌 대변인이 제 역할을 할지도 미지수이긴 하다. 하지만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치사에 처음 시도되는 퍼포먼스를 지나치게 폄훼할 것 까지는 아니지 싶다.
류 의원과 이 대표는 향후 우리 정치를 이끌어갈 ‘젊치인(젊은 정치인)’이다. 기성세대 시각에서 이들의 돌출적 정치행위는 마뜩잖을 수도 있다. 기성 정치인들이 펼쳐 온 이벤트 정치를 익히 봐왔던 터라, 이들의 행위 또한 단순한 퍼포먼스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인 셈이다. 그러나 국민의힘 당 대표 선출 과정에서 확인됐듯이 세대교체 바람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류 의원은 자신의 퍼포먼스에 대해 “국회는 지금 50대 중반 남성 위주로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낯섦에 대해서 파격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 같다. 그런 부분을 감추기 보다는 드러내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파격이든 낯섦이든, 이벤트 정치엔 명암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의 민도는 그게 속 보이는 ‘유사품’인지 아닌지를 구별할 수준은 된다. 기성세대의 일방적 시각으로 재단하는 시대는 지났다는 얘기다. 물론 이들 젊은 정치인이 시간이 흐르면서 과거처럼 기존 정치 관행에 물들어갈지 여부는 지켜볼 일이다. 어찌됐든 이들이 물꼬를 튼 파격이 점차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면 그 자체로 정치판에는 커다란 변화다. 정치가 사회의 변화를 이끌지는 못할 망정 발목만 잡아서야 될 일이 아니다.
논설실장 jj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