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제가 시작된 지 30년이 지났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한국의 분권은 결과적으로 서울 공화국만 살찌우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국가균형발전위원회와 자치분권위원회가 존재하지만, 그 역할을 제대로 해오지 못했다. 중앙집권체제의 정치권력에 맛들인 정치지도자들의 흰소리를 탓한들 무엇하랴. 온전하지는 않지만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이 시행되어 특별지방자치단체 설립이 가능하게 됨으로써 새로운 분권을 위한 토대가 마련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부울경은 지난 4월 동남권 광역특별연합 추진을 위한 합동추진단을 구성했다. 추진단은 8월에 규약을 마련하여 2022년 1월 행정안전부의 승인을 받아 동남권 광역특별연합을 출범하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그동안 동남권 발전계획 수립 공동연구를 통해 4대 공동체 전략, 8개 분야의 40개 사업을 제시했다. 구체적으로 제시된 4개 공동체 전략은 행정공동체, 생활공동체, 경제공동체, 문화공동체 전략이다. 이 중 관심이 가는 영역은 동남권 메가시티 문화공동체 전략이다. 아무리 행정, 생활, 경제공동체가 형성되더라도 문화공동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지역민의 현실적인 행복지수가 높아지리라고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화공동체 전략을 살펴보면, 문화의 본질적인 차원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 제시된 전략은 ① 2030 부산 월드엑스포 동남권 공동 대응체계 구축 ② 동남권 아시아 문화 허브 구축 ③동남권 역사·문화 관광벨트 조성 ④글로벌 해양관광 복합벨트 조성 등이다. ①은 유치를 추진 중인 월드엑스포 행사를 겨냥한 것이고, ②는 동남문화권의 지향점이며, ③④는 관광을 위한 전략이다. 이는 철저히 현실적이면서 관광에 치우친 전략이다. 동남권 문화의 미래를 위해서는 이런 전략도 필요하다. 문화와 관광은 서로 뗄 수 없는 깊은 관계를 지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광을 목적으로 문화가 수단화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런 문화전략은 생명이 길지 않다. 긴 안목에서 문화를 인식하고 문화의 본질에 충실한 전략을 세울 때, 그 문화가 성숙하면 자연 관광상품으로 자리하게 된다. 이런 차원에서 동남 문화권 형성을 위한 전략은 출발부터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첫째는 지금 현재의 부울경 문화의 정체성과 한계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작업이 선결되어야 한다. 부울경은 원래 문화적으로 한 뿌리였다. 도시화의 과정을 통해 행정구역이 삼분된 것이다. 삼분되면서 부울경은 각 지역마다 삶의 토대에 근거한 문화의 양상이 다양하게 분화되었다. 변화는 있지만 여전히 어촌 산촌 농촌의 형태를 지니고 있는 지역과 중소도시와 대도시로 나뉘어져 있다. 이는 부울경 문화 자체가 다양성을 지니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 문화의 다양성을 유지하면서 어떻게 문화 민주화를 실현시켜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와 함께 부울경이 지향해야 할 동남문화권의 정체성을 재구성해야 한다. 어느 지역의 문화를 모델화하는 선이 아니라, 그 어느 지역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동남문화권의 정체성을 형성해 나갈 방향성을 설정해야 한다. 그래야 명실공히 동남문화권을 통해 지역분권이 온전히 실현될 수 있다.
둘째는 지금 나와 있는 문화적 전략이 부울경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문화예술 전문가 집단지성의 논의 결과가 아니라는 점이다. 지금과 같은 문화의 시대에 문화적 전략수립은 문화전문가들의 손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재 지자체의 문화 행정의 구조 속에서 지자체의 공무원이나 부울경 연구원의 문화전략 수립은 그 토대부터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문화전략의 수립을 행정에 일방적으로 맡길 것이 아니라, 부울경 지역에 산재해 있는 다양한 문화기관이나 단체 실무자들의 현장 경험과 역량을 빌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시간에 쫓겨 급조되는 문화전략은 결국 부울경 지역문화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경제나 정치논리에 함몰되기 십상이다.
문화전략은 문화논리에 의해 수립되지 않으면 문화다운 문화를 정립하기가 근본적으로 힘들다. 동남 문화권 형성과정이 문화전문가 집단지성의 문화논리에 의해 설계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남송우 부경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