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 내내 선거다. 새해 벽두부터 부산·서울시장 보궐선거로 들썩이더니 예상을 깨고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화제가 됐다. 다음달부터 내년 6월까지도 온통 선거판이다. 여야 대선 후보 경선이 곧 시작되고, 이어 대선과 지방선거라는 빅이벤트가 열린다.
숨가쁘게 이어지는 선거에서 새로운 트렌드가 뚜렷하다. 생소한 변화는 부산 울산 경남(PK) 정치권에서도 확연하다. 세상 바뀐 것을 이제야 ‘여의도’가 체감하는 느낌이다. 변화는 국민의힘부터 덮쳤다. 보수정당 내부에서 과거의 정치 문법을 뒤집는 형태로 나타났다. 원인을 놓고 전문가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무엇이 됐든 명확한 것은 과거와 다른 현상이다.
‘배후 정치’. 몇몇 특정 세력이, 혹은 일부 실세가 소위 판을 좌우한다. 보수정당에 전승돼온 정치 기술이다. 이 세력은 음습하고 은밀하게 움직인다. 몇몇 당의 권력자가 ‘신호’를 하면 국회의원들은 일사불란했다. 연초부터 잇따른 국민의힘 경선 때도 ‘배후’는 있었다. 이들은 여러 방법으로 의중을 드러냈다. 과거에 했던 대로. 부산시장 보궐선거 경선 때도 여러 형태의 배후들이 나타났다. 공통된 의중은 ‘박형준’이 아니라는 것. 박형준 부산시장은 부산 정치권의 비주류중 비주류였다. 한 때 ‘보수 싱크탱크’로 평가받던 시기에도 부산에서 관심밖이었다. 그는 별 어려움없이 경선을 통과했다. 부산 국회의원들도 일찌감치 ‘모른 척’ 그를 도왔다. 배후의 의중과 당심이 불일치한 것이다.
‘배후’의 위세가 예전보다 약해졌거나, 당심이 변했거나 둘 중 하나. 원인은 지난 전당대회에서 곧 확인됐다. 그들이 알던 당원들이 아니었던 셈이다. 전당대회의 처음과 끝을 ‘이준석’이 장식했다. 국회의원 경험이 없고, 10년간 탈당과 복당이라는 부침을 겪은 36세의 청년 정치인. 가까운 부울경 국회의원은 손에 꼽을 정도다. 경쟁했던 주호영 후보는 5선, 나경원 후보는 4선의 중진. 주 후보는 21대 국회 첫 원내대표를, 나 후보는 20대 국회 마지막 원내대표를 맡았던 권력자다. 이들과 엮인 부울경 의원들이 훨씬 많았을 것이라는 것은 합리적 추론이다. ‘작업의 유혹’은 국회의원들도 예외는 아닐터. 이들 역시 여러 방법으로 당원들에게 의중을 전달했다.
그런데 종합성적에서 이준석 대표의 압도적 당선. 당심에서도 37.4%로 나 후보(40.9%)에 크게 밀리지 않았다. ‘국회의원 의중=당심’이라는 등식이 깨진 것이다. 더이상 배지의 줄세우기가 통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배후 정치’는 ‘피라미드형 구조’에서 작용한다.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의 ‘3김 정치’의 특징인데, 이들의 퇴장에도 보수정당에서 대물림됐다. 이회창 이명박 박근혜 등을 중심으로 각 지역의 소실세→지역 국회의원→지방의원→당원으로 연결되는 수직적 지배·복종 체제를 구축했다. 이런 구조는 필연적으로 적폐를 양산했다. ‘자리 나눠먹기’ ‘공천 줄세우기’ 등 숱한 부패들은 지배구조를 강화하는 자원으로 활용됐다. 폐단은 부산 울산 경남 보수정치권에서 유독 심했다. 대구·경북의 최고권력자에 대한 충성은 ‘출세길’을 보장받았다. 그 결과가 ‘박근혜 탄핵’이다. 겹겹이 쌓인 폐단이 자신들을 덮친 꼴이다.
잇따른 국민의힘 경선은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부동산 취업 등 사방이 불공정한 시기. ‘MZ세대’로 통칭되는 2030세대의 각성이 강제했다. 정치 소외층·무관심층으로 인식되던 이들은 ‘니즈’에 맞는 후보를 무서운 결집력으로 밀어올렸다. 지역 계층 세대 등의 요구에 맞출 수밖에 없는 상황이 형성됐다. ‘니즈 정치’는 아래에서 위로의 변화를 강제한다. 수평적이고 투명하다. 기존 문법을 고수하면 도태된다.
실세·구심으로 포장된 작업 정치, 배후 정치의 퇴조는 뚜렷하다. 지역에도 긍정적이다. 21대 새로 등장한 부울경 초선들은 각종 현안에 따로, 또는 함께 대응한다. 행동은 빠르다. 소재도 다양하다. 과거의 굼뜸과 눈치보기는 더는 유효하지 않다. 정치의 업그레이드가, 새로운 정치문법이 완성되길 기대한다.
서울정치부장 yain@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