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기후위기와 관련한 담론들이 넘쳐난다. 국가 간의 정상회담이나 국제회의에서 주요 의제로 오르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됐다. 그만큼 기후위기는 인류가 맞닥뜨린 위중한 문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인간 삶의 기본조건인 기후의 심각한 이상은 환경문제를 넘어선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숱한 논의나 선언에도 불구하고 기후위기에 대한 처방은 대증요법에 그치고 있다. 온실가스를 줄이는 것이야말로 선택의 여지가 없는 근본요법이지만, 그것을 실현하려는 구체적 처방이 따라주지 않는다. 기후위기에 대한 성찰의 부족으로 뚜렷한 비전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무한성장이란 환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도 한몫한다고 볼 수 있겠다.
‘우리는 기후위기를 환경문제를 넘어서 경제 사회 안보 인권과 연관된 과제들에 영향을 미치는 시급한 국제적 위협으로 간주한다’. 지난달 말에 우리나라에서 열렸던 P4G 녹색미래정상회의가 채택한 ‘서울선언문’의 머리 부분이다. 기후위기의 긴박함을 비장하게 수식하고 있지만, 정작 각론은 두루뭉술하고 현안에 대한 실천목표가 부족하다.
인류문명을 파국의 위기로 몰아넣고 있는 기후위기가 어디에서 비롯됐는가에 대한 성찰이 우선돼야 한다. 산업혁명 이후 인간은 물질적 풍요와 편리에 탐닉하면서 자연생태에 대한 파괴적 약탈을 일삼아 왔다. 기후위기를 넘어서기 위한 해법은 간단명료하다. 기온상승의 주된 원인인 온실가스를 줄이면 된다. 우리가 누리는 풍요와 편리를 줄여야 한다는 말이다. 자원의 유한함을 깨달아 절약하고 절제하면서 욕망을 줄이는 것 말고는 해법이 없다. 이렇듯 뺄셈이야말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기본적인 셈법이 돼야 한다.
문제는 무한성장의 미망에 사로잡혀 화급한 과제 앞에 미적거리고 있는 인류의 대처에 있다. 온실가스 감축의 운만 거창하게 띄우고, 실천에서는 흐지부지하고 무책임으로 일관해 공허한 울림만 이어졌다.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본격 논의가 시작된 2015년 파리기후협약 이후 국제사회가 얼마나 책임 있게 대처했는지 되돌아보면 알 일이다.
우리 정부도 지난해 ‘2050년 탄소 배출 제로’를 선언했지만, 정작 그에 따른 후속 대책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기후위기 대응책으로 저탄소발전을 내세우면서도 온실가스의 주범인 화력발전소 건설에 집착하고 있다. 시민사회는 이번 P4G 정상회의를 개최한 정부에 신규화력발전소 7곳의 철회를 요구하면서 위장환경주의를 규탄했다.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는 주로 인간의 경제활동에서 배출된다. 따라서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산업구조를 개편하고, 궁극적으로 소모적 경제활동을 줄여나가야 한다. 대량생산-대량유통-대량소비-대량폐기의 자원낭비 경제 틀에서 벗어나 덜 만들고 덜 쓰는 빼기의 가치가 미덕이 돼야 할 것이다.
빼기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나누기다. 기후위기에 대처해 나가는 과정은 어둡고 긴 터널을 통과하듯 혹독한 시간이 될 것이다. 산업구조를 개편하고 경제활동을 규제하면 일자리가 급감하고 가계소득도 줄어들 게 뻔하다. 비정규직 등 사회적 약자가 가장 먼저 무방비 상태로 피해에 노출될 것이고, 생계의 위기로 내몰리는 취약계층 또한 급격하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처럼 기후위기는 양극화와 불평등의 골을 더욱 깊게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서민계층 위기로 내몰리는데 정작 원인을 제공했던 재벌기업이나 에너지를 다량소비하는 부유층은 위기 속에 부의 창고를 더욱 살찌우고 있다.
옥스팜이 지난해 낸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상위 10% 부자가 탄소배출의 52%를 책임져야 한다고 한다. 소득 하위 50%의 탄소배출 책임은 불과 7%에 그친다. 풍요와 편리를 마구 누리는 이들일수록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지만 정작 그들에게 어떤 책임도 돌아가지 않는다. 승자독식의 자본주의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기후위기는 정의의 문제와 직결돼 있다. 온실가스를 줄여나가는 과정에 정의의 문제, 즉 공정과 공평의 잣대가 중요하게 작용해야 하는 이유다. 많이 쓰고 배출하는 이들이 더욱 크게 책임지는 구조가 돼야 한다. 아울러 재난적 상황 속에서 벼랑으로 밀려난 소외계층에 대한 배려와 지원책이 절실하다.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인류사회의 엄중한 현안, 기후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책임감 있는 대처가 절실하다. 기후위기 대응의 최일선에 선진국, 대기업, 부유층 등 온실가스 배출에 큰 책임을 지닌 집단들이 앞장서야 할 것이다.
정부나 기업이나 친환경의 미사여구만 남발할 게 아니라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구체적 대책을 내놓고 당장 실천에 나서는 게 중요하다. 모든 주체가 기후위기에 대한 인식의 공감대 위에 경제 사회 정치 문화 전 영역에서 대전환을 도모할 때 어둡고 긴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다. 그 길에 빼기와 나눔의 가치가 길잡이가 될 것이고.
장병윤 한살림부산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