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여러 날 술잔을 기울이며 눈시울을 붉힌 적이 있었다. 다니던 병원에서 갑자기 그만두게 된 것이었다. 젊은 시절, 열정을 바쳐 환자를 돌봤고 활기찬 청춘을 병원에 바쳤다. 병원에서의 위상이나 기여도가 탁월했고 동료들과는 깊은 정을 나눴다. 천직이라 여겼던 외과의사의 길을 멈춘다 생각되어 깊은 혼란에 빠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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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 서상균 기자 |
병원장의 적극적인 스카우트 제의로 갔던 그곳은 도심에서 벗어나 시골이나 다름없었다. 주변은 서민층 인구 밀집지역으로 교통이 불편해 환자들이 먼 곳으로 갈 수 없었다. 대학병원의 문턱도 높았다. 각종 수술을 감당할 외과의사가 적었기 때문에 많은 환자가 몰려왔다. 지역 주민들로부터 상당한 신뢰도 얻게 되었다.
실적이 하늘로 치솟자 항문수술을 배우기 위해 한 달간 일본으로 연수를 다녀왔다. 당시 나는 간·담도·췌장수술과 복강경 수술을 전공했고 다양한 수술도 소화 가능했으나 환자 분포가 많은 항문수술을 익혀 병원에 기여하고 싶었다.
외과의사가 하는 수술에는 병들거나 곪은 곳을 날카롭게 도려내거나 환자의 아픈 곳을 깔끔하게 해결하는 즐거움이 따른다. 수술 과정은 메스로 피부를 절개하고 병변에 도달하게 되면 정상적인 조직을 보존하거나 기능을 유지하면서 원인을 제거하거나 재건하게 된다. 이후 절개된 부위를 봉합하면 끝이다. 메스와 가위, 실과 바늘, 그리고 의사의 손 기술만으로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일이 허다하다. 수술의 결과는 대부분 명쾌하고 다이내믹하다.
환자가 자신의 몸을 맡기면 외과의사는 익숙한 지식과 기술, 경험을 바탕으로 수술에 임한다. 수술은 진지하면서도 상당한 집중력과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당연히 외과의사는 건강해야 하고 체력도 필요하다. 수술 중에는 항상 몰입해야 하고 몰입의 찰나에는 장벽도 나타나고 위험도 함께 한다. 고된 수술 끝에 성공적인 과정과 결과는 집도 의사에게 짜릿함과 형용할 수 없는 즐거움, 극단적인 성취감을 안겨준다.
수술은 흥미롭고 멋진 일이지만 집도 의사의 환자에 대한 책임은 무한하다. 환자가 건네는 감사의 표현에 책임은 한순간에 보람으로 바뀐다. 정확한 지식과 판단, 수술 기술이 완벽하게 작동했는데도 환자의 상태가 나빠지는 경우도 있다. 나빠진 환자의 상태가 자연적인 것인지 의사의 잘못으로 발생한 것인지를 입증하는 과정에 고충이 따르기도 한다.
과거 30년간 수술은 대변혁을 겪었다. 강력한 지혈기구와 수술 장비의 개발로 최소 침습 수술을 추구하게 되었다. 피부를 크게 절개하지 않고도 작은 구멍으로 고화질 카메라에 연결된 모니터를 통해 훌륭한 수술 시야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엉겁결에 그만두게 된 나는 종합병원 취직이 가능했으나 복잡한 이해관계가 두려워 치밀한 준비도 없이 홀연 개원가의 길을 걷기로 결정했다. 당시 제한된 공간의 작은 의원에서 외과의사 혼자서도 잘 할 수 있는 것이 항문수술이었다. 대장항문과는 환자가 많고 합병증이 적어 개인의원에서 수술을 시행하기에도 부담이 덜 했다.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었으나 우려를 넘어 개원은 대성공을 이뤘다. 병원을 위해 익힌 항문 수술이 내 운명을 바꿔 놓을 줄 예상치 못했다. 나의 손길을 원하는 환자는 넘쳐났고 입소문을 타면서 병원은 고속성장을 거듭했다. 5년이 지나자 신축 건물로 이사하여 몸집을 부풀렸다. 얼마 뒤에는 대한민국 1호 외과전문병원 지정을 받았다. 숱한 스토리를 남긴 채 20년이 지난 지금, 20여 명의 의사 외 150명의 직원이 함께 호흡하는 제법 규모 있는 2개의 외과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수술실은 번듯하고 멋지게 치장되어 들어설 때마다 기분이 좋다. 맘 놓고 수술하기 딱 좋은 장비는 외과병원에 안성맞춤이다. 원래 전공이었던 복강경 수술의 수준도 드높였다. 고통받는 환자에 수술로 도움을 줄 수 있음은 외과의사에게는 큰 기쁨이다. 어느덧 전공과 부전공이 바뀌었고 나는 대장항문의사가 되었다. 어려울 때 용기가 되었고 병원 성장의 힘찬 동력이 된 항문수술로 외과의사의 길을 평생 걷게 되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황성환 부산제2항운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