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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작약이 떠날 준비하던 날 /차영은

  • 차영은 플로리스트
  •  |   입력 : 2021-05-18 19:43:00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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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뿌리에 묻혀 있다는 보물 상자를 찾아 나선 적이 있다. 그곳은 어린 시절 내가 살던 집에서 보이던 뒷산이었다. 멀지는 않았지만 정확히 어디인지 알 수 없는 곳이었다. 어린 나는 무지개 뿌리가 닿은 그곳에 가고 싶었다. 보물 상자 안에 금은보화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그 보물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나에게 보물이란 소원을 들어주는 만화주인공 ‘바람돌이’ 같은 친구를 실제로 만나는 것이었다.

비가 그친 뒤 반가운 무지개를 보았던 어느 날, 친구들과 함께 ‘저쪽 어디쯤’ 일 것이라는 막연한 확신을 가지고 집을 나섰다. 무지개가 닿은 숲에 다다르자 무지개는 찾아 볼 수 없었다. 우리는 흩어져 보물 상자를 찾아보기로 했다. 그러나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리자 잔뜩 겁을 먹은 나는 친구들을 불러 한걸음에 산을 내려왔다. 기대를 가득 품고 무지개 뿌리를 찾아 나선 모험이었지만 불현듯 찾아든 두려움이 내 마음을 완전히 딴 세상으로 데려다 놓았다. 무지개, 보물 상자 그런 희망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숲속 괴물이 나올 것만 같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친 것이다. 보물 상자도 괴물도 어느 것도 직접 보지 못한 것이지만 마음에는 둘 다 생생하게 존재했다.

어른이 된 지금 나는 아직도 그때와 같은 경험을 하곤 한다. 진짜 무지개를 보고 길을 나서는 것이 아닐 뿐 나는 늘 무지개를 찾아 나서고 그 길 위에서 두려워한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설렘도 두려움도 이 모든 것이 내 마음의 작용이라는 것을 알았다는 사실이다.

화엄경 제1장 세간정안품(世間淨眼品) 첫 페이지를 펼쳐 다시 읽는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중략). 부처님께서 처음으로 깨달음을 이루셨을 때 대지는 청정해지고 갖가지 보화와 꽃으로 장식되었으며 아름다운 향기가 넘쳐 흘렀다(중략). 그때 부처님께서는 과거 현재 미래의 진리가 모두 평등함을 깨달았고 그 지혜의 광명은 모든 사람의 몸속까지 비추었으며 ……’.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처음으로 화엄경을 읽던 날 전해지던 전율을 잊을 수가 없다. 나에게 보물지도와 같았다. 위대한 스승의 깨달음을 나도 알 수 있을까? 그곳을 가득 채운 꽃과 아름다운 향기는 어떤 것이었을까? 그것을 알면 무지개 따위는 찾을 필요가 없지 않을까?

나는 보물이 묻힌 곳을 알려주는 무지개를 먼 하늘에서가 아니라 내면의 길에서 찾고 있다. 무지개의 한쪽이 내 마음 어딘가에 뿌리를 내렸는지 나는 내 심장이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하나씩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이것이 나의 보물지도의 시작이다. 내면에 드리워진 무지개를 따라가면 갈수록 나와 세상에 대한 진실이 궁금해진다. 엉뚱한 곳에서 그것이 나의 전부라고 생각하던 어리석음을 깨닫는다. 꽃은 무지개를 찾아 나선 길을 함께 가는 도반 같은 존재이다.

꽃의 향기와 모양 빛깔 촉감에 집중해 보자. 향기를 맡을 땐 눈을 감아도 좋다. 그것을 통해 자신의 마음과 마주해 보라. 마음으로 꽃을 보는 것은 자신의 내면에서 보물을 발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꽃과 함께하는 시간은 명상이 된다.

모두 잠든 어두운 밤, 5월의 작약 꽃잎 위에 얼굴을 묻는다. 황홀한 향기와 촉촉한 꽃잎의 부드러움이 들뜨게 한다. 나도 모를 무의식의 호수에 번지는 파문이다. 한 순간에 피는 수많은 꽃잎이 황홀하다. 그렇게 잠시 흥얼거리고 있을 즈음 후두둑 꽃잎이 떨어졌다. 작약이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 소리를 들었다.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 수많은 생은 이미 이별을 예고하고 있다. 그들의 죽음을 입어 오늘을 사는 나는 그 몫을 대신할 일을 찾아 나선다. 나의 보물지도는 이렇게 이어진다. 어른이 되어 꽃을 두고 만나게 되는 많은 사람들은 보물 상자를 찾으러 산으로 함께 간 친구들과 다르지 않다. 우리들이 나눈 생각은 아름다운 무형과 유형의 사건들로 다시 피어나고 열매를 맺을 것이다. 나는 그들 모두가 각자의 보물지도를 완성해 나가길 바란다. 그것은 나의 보물이 될 것이다. 당신은 어떤 보물을 발견하기 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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