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5년 차가 시작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인수위도 없이 서둘러 출범한 문재인 정권은 적폐청산을 시작으로 탈원전과 소득 주도 성장, 검찰 개혁 등 모든 분야에서 과거정권과 뚜렷하게 차별화되는 정책들로 달려왔다. 집권 1년 반 만에 코로나 19 감염병 사태가 들이닥치면서 시험대에 오르기도 했다. 어떤 정책은 아직 진행중이고, 어떤 정책은 실패했고, 어떤 정책은 나름대로 평가를 받기도 했다.
집권 5년 차, 이제 마무리에 나서야 할 시점이다. 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다짐했던 ‘국민 여러분의 자랑으로 남는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남은 1년이 중요하다. 문 대통령의 말마따나 우리는 여전히 위기 속에 있고, 국민은 평범한 일상으로 복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내외 환경은 녹록지 못하다. 코로나 19 사태는 쉽사리 종식될 전망이 보이지 않고, 경제 상황도 낙관하기 힘들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일 취임 4주년 회견에서 “코로나 전쟁이 끝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강조했지만, 백신접종률은 아직 OECD 국가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또 “모든 경제지표가 견고한 회복흐름”이라고 진단했지만, 자영업자들이나 일반 국민이 체감하는 실물경제와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 비정규직은 늘어났지만 정규직은 오히려 줄어드는 등 일자리 상황이 좀처럼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나라 빚은 1년 새 100조 원 넘게 늘어났다. 정책 실패로 부동산 시장 불안정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집권 초반 전례 없는 성과를 올렸던 남북관계는 교착상태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고,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 틈바구니에 낀 외교 문제도 돌파구 마련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악전고투했고 나름대로는 선방했다고 자위하더라도, 자화자찬할 정도는 아니라는 얘기다.
임기 말 당청 관계는 지금까지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벌써 대선후보 경선 국면으로 빠르게 전환 중이다. 곧 ‘미래 권력’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하게 될 것이다. 여당 대선후보가 선출되면 레임덕 현상은 한층 가속화된다.
실질적으로 일할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이럴 때일수록 ‘피할 수 있는’ 갈등은 피해 가야 한다. ‘협치’를 통해 추진 중인 정책을 마무리하고 성과를 남기는데 주력해야 한다.
그런데 문 대통령의 속내는 국민이 보는 관점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어 보인다. 취임 4주년 기자회견에서 지난 4·7 부산·서울시장 선거 참패에 대해 “정말 죽비를 맞고 정신이 번쩍 들 만한 그런 심판을 받았다 생각한다”고 말했지만, 지금까지의 국정 운영 방향에 대한 변화 의지를 읽을 수는 없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치면서 일반인들로서는 상상도 못할 도덕적 흠결이 드러난 후보자들에 대해 유감을 표시하기보다는 청문회 제도와 흠집내기식 질문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임혜숙 과기부장관 후보자는 국가지원금으로 가는 해외출장에 수 차례나 가족을 동반했는가 아면, 위장전입과 논문표절, 배우자에 대한 논문 내조 등 제기된 의혹과 사실관계가 이루 나열하기조차 힘들 정도다. 박준영 해수부장관 후보자는 수 천만원대의 유럽산 도자기 1250점을 외교관 행낭을 통해 몰래 들여와 판매했다. 사실상 밀수행위다. 노형욱 국토부장관 후보자는 세종시 아파트를 특별 공급받아 수 억 원대의 차익을 남겼는가 하면, 부인의 절도 경력이 드러났고, 아들은 실업급여 부정수령 의혹도 받고 있다.
과거 청문회였다면 이 정도 흠결은 당연히 배척사유다. 청와대 검증과정에서 걸러지지 않았다고 해도 본인들이 기피하는게 당연하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취임후 29차례나 국회의 청문보고서 합의채택 없이 장관급 인사들에 대한 임명을 강행했다. 이를 모를 리 없는 후보자들이 ‘며칠만 창피당하면 임명된다’는 생각으로 청문회에 임한 듯하다.
역시 문 대통령은 “야당에서 반대한다고 해서 검증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면서 “무안주기식 청문회 제도로는 정말 좋은 인재들을 발탁할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도덕성에 대한 흠결을 따지고 무안주기식 청문회가 된 것을 야당탓이라고만 할 수 없다. 사전검증이 부실했거나, 검증 잣대가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참다 못한 여당 초선의원들은 문 대통령이 청문보고서 재송부를 요청한 직후 “1명 이상은 지명을 철회해야 한다”면서 반기를 들었고 결국 관철시켰다. 이미 당청 관계에서 당이 우위를 차지했고, ‘당의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이제 문 대통령도 초심으로 돌아갈 때이다. 국가의 역량을 모아 민생 회복에 전력해야 할 임기 막바지에, 밀어붙이기식 국정 운영은 실효 없이 시간만 낭비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취임사에서 약속했던 “국민과 역사가 평가하는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아직은 남아 있다.
선임기자 thrk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