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용어에 ‘감항인증’이라는 말이 있다. ‘감항’이란 견딜 감(堪), 배 항(航)의 합성어로 항공기가 안전하게 비행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과거 군사용 항공기를 도입할 때 적에 대한 공격무기 등 무장력만 우선적으로 따지다 정작 비행기로서의 운항 능력을 놓쳐 사고가 잇따랐다. 이에 지난 2009년 ‘군용항공기 비행안전성 인증에 관한 법률’이 제정돼 감항인증(Airworthiness Certification) 절차가 강제화됐다.
지난달 4일 임기를 넉 달이나 남기고 전격 사퇴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정치입문이 초읽기에 들어간 분위기다. 여당의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추진에 발끈해 총장직을 내던진 그는 곧바로 차기대선 주자 여론조사에서 선두로 치고 나섰다. 특히 4.7 재·보선에서 여당이 참패하자 야권에선 ‘윤석열 대망론’까지 나오고 있다. 그의 거취를 놓고도 신당 창당 등 제3지대론에서, 국민의힘 입당 등 여러 설이 난무하고 있다. 어디를 택하든, 그가 정말 정치를 할 요량이라면 반드시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정치를 감당할 수 있는지를 스스로 냉철하게 따져보는 ‘감정(堪政)인증’이다. 철저한 자기검증도 없이 덜컥 정치 첫발부터 뗐다간 본인도, 나라도 곤경에 빠뜨릴 가능성이 큰 탓이다.
제1의 검증 항목은 역시 ‘검찰의 정치 중립’이다. 그가 총장 취임 일성으로 강조했던 이 가치는 장관의 수사 지휘권과 징계에 맞서는 무기로도 사용됐다.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 지난해 국정감사장을 발칵 뒤집어놓았던 이 발언이 대표적 사례. 여론은 우호적이었다. ‘검찰의 정치 중립’에 대한 국민 여망 덕분이었다. 이처럼 ‘검찰 중립’을 방패로 권력과 맞서던 그가 돌연 총장직을 던지고 정치로 직행할 가능성이 커지자 당장 내부에서 우려가 제기됐다. “전직 총장이 어느 한 진영에 참여하는 형태의 정치 활동은 법질서 수호를 위한 기관인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국민적 염원과 모순되어 보인다.” 박철완 대구지검 안동지청장의 이런 지적에 반대 의견도 없지 않았다. “자연인 윤석열의 정치 참여는 자유”, “누가 그를 정치로 내몰았는데…” 등 등.
1987년 현행 헌법시행 이후 지금까지 검찰총장은 모두 22명. 이중 퇴임 후 정치에 참여한 이는 김기춘 김도언 두 사람 뿐이다. 장관 국회의원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승승장구하며 숱한 논란을 빚었던 김기춘은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 등으로 결국 구속됐다. 김도언은 총장에서 물러난 뒤 바로 총선에 뛰어들어 엄청난 비판을 자초했다. 이 바람에 퇴직한 검찰총장의 정당 가입을 2년간 제한하는 법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후 위헌 판결을 받아 퇴임 총장의 정치 제한법은 없어졌다. 그러나 총장의 ‘퇴임 후 정치 불관여’ 불문율이 자연스럽게 정착됐다. 그럼에도 검찰은 대선 국면이면 언제나 정치권 풍향에 심하게 흔들렸다. 이번엔 사상 처음으로 직전 총수가 직접 대선판에 뛰어드는 모양새다. 당연히 검찰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과 대립은 격화될 수밖에 없다.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가치를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는 선택에 대해 그는 어떻게 국민을 납득시킬까.
물론 윤 전 총장은 헌법정신, 정의와 상식, 공정의 위기를 말하며 정치권 ‘등판’을 정당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가치에 대해서도 자신이 적임자인지 따져봐야 한다. 지난 2019년 7월 그를 상대로 한 검찰총장 인사청문회의 한 장면. 야당 의원들은 비리 혐의로 수사를 받던 측근 검사의 형이자, 전 세무서장에게 후배 검사 출신 변호사를 소개하는 식으로 사건무마에 관여하지 않았느냐고 추궁했다. 그는 강하게 부인했지만 뒤늦게 공개된 녹취록 탓에 거짓말이 드러나자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소개한 변호사가 “사건을 수임하지 않아” 잘못 없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그가 국민의 대의기관이자 헌법기관인 국회에서 검찰 연고주의를 당연시하던 태도였다.
총장 재임시절 라임자산운용 수사에 관여한 검사 3명이 사건관계자로부터 제공받은 고급 술집 향응 사건도 마찬가지. 검찰의 자체 늑장 수사 끝에 1명만 기소되고 2명은 기상천외한 셈법으로 처벌기준인 100만 원에 4만 원에 못 미치는 96만 원씩 접대를 받았다며 자체 징계로 넘겨졌다.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여론이 비등했지만 정작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래서일까. 자칭 ‘헌법주의자’라는 그에게서 ‘검찰주의자’라는 꼬리표가 좀체 떨어지지 않는다.
오로지 검사로 살아온 그가 정치, 그것도 대권에 도전한다는 점도 필수 점검 대상이다. 민주화이후 7명의 대통령은 모두 1번 이상 국회의원을 지냈다. 그래도 예외 없이 제왕적 대통령 논란에 휩싸였다. 의회 경험도 전무한 데다 ‘절대무기’ 수사권으로 범인 때려잡는 데 이골이 난 그가 협상과 타협의 고난도 정치 방정식을 제대로 풀 수 있을까. 윤 전 총장 스스로 ‘감정인증’을 통해 그 답변을 미리 내놓아야 한다.
부산가톨릭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