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들의 평가는 냉정했고, 민심은 매서웠다. 문재인 정권 4년에 대한 평가 성격을 띤 부산과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집권당인 민주당은 부산 16개,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어느 한 지역에서도 승리하지 못하고 처참하게 패배했다. 국민의힘이 특별하게 잘 한 것이 없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정부여당에 대해 쌓여온 분노가 폭발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지난해 4월 총선에서 압승했던 민주당이 불과 1년 만에 냉혹한 심판을 받은 것이다. 지난 1년 동안 과연 무슨 일이 있었기에 민심이 이토록 급변했을까.
#위선과 배신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롭게 하겠다”고 말해 지지자들은 물론이고 온 국민의 환호를 받았다. 하지만 ‘공정’은 같은 편끼리만 통하는 ‘은어’가 되어버렸고, 국민의 심금을 울렸던 그 멋진 약속 대신 내로남불과 위선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위선이야 익히 알려져 있었지만, 서민의 주거비 고충을 들어주겠다면서 임대료 인상 상한폭을 명시한 임대차법을 만든 사람들이, 알고보니 자기들은 법이 통과되기 직전에 상한폭을 훨씬 초과하는 액수의 임대료를 인상시켰다는 사실에는 아연할 따름이다. 오죽했으면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내로남불’ ‘위선’ 등의 문구를 특정정당을 연상시킨다면서 현수막에 사용하지 못하게 했을까. 해외토픽 수준의 압권이다.
#현 정권은 역대 어느 정권보다 힘이 센 정권이다. 180석의 의석으로 입법부는 물론이고, 사법부까지 3권을 완벽하게 장악했다. 여기에다 지방권력과 시민사회단체까지 손안에 넣었다. 지난해 총선 이후 사실상 ‘무소불위(無所不爲)’ 정권이었다. 입법독주가 이어졌지만, 정작 중요한 실력은 보여주지 못했다. 양질의 일자리는 갈수록 줄어들었고, 집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급기야 임대차 3법으로 전월세 대란까지 벌어졌다.
그뿐만 아니다. 정권비리 수사는 곳곳에서 제동이 걸렸고, 검찰총장은 결국 물러났다.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고위공직자수사처의 수장은 피의자 신분인 이성윤 서울 중앙지검장을 관용차로 모셔와 면접인지 접견인지를 했다. 박근혜 정권 당시 ‘황제 조사’로 논란을 빚었던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 대한 검찰 조사를 연상케 하기 충분했다.
성추행 피해자는 ‘피해호소인’으로 불려져야 했고, 대통령의 전직 비서실장 조차 2차 가해를 자행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성금을 횡령·배임한 혐의로 기소된 윤미향은 버젓이 집권당의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은 세계 110위권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가장 심각한 것은 국론분열이다. 적폐청산으로 시작된 이념의 양극화는 역대 어느 정부 때보다 심각해지면서 치유 불가능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민주당의 선거패배는 자초한 측면이 적지않다. 민심을 오판하고, 민심 앞에 오만했다. 중도층을 무시했다. ‘니네들이 어디로 가겠느냐. 어차피 국민의힘으로는 가지 못할 것이고, 결국 우리에게 돌아올 수 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자만이었다. 견제와 균형은 사라지고 합리적 비판조차 설 자리를 잃어가는 집권당에, 중도층의 마음이 떠나기에 1년은 충분한 시간이었다.
눈여겨봐야할 대목은 20, 30대 청년들의 변심이다. 불과 1년 전 까지만 하더라도 부끄러워서 국민의힘을 지지한다는 말도 못하던 세대들이, 이번에는 앞다퉈 국민의힘 유세차에 뛰어올라갔다. 본인들도 밝혔지만, 국민의힘이 잘해서가 아니라 민주당에 분노해서이다. 이들은 민주당이 공정의 가치를 배신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입으로만 공정을 외쳤을 뿐, 위선과 거짓으로 청년들의 미래를 빼앗았다고 절규했다.
민주당은 스스로 ‘샤이 진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보수 지지층임을 밝히기 부끄러워하는 ‘샤이 보수’가 많다고 했는데, 이제는 반대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사실은 진보 지지자임을 밝히기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민주당 지지자임을 밝히기가 부끄러워한다는 것이 ‘샤이 진보’의 실체다.
#여권은 이제라도 자세를 낮춰야 한다. 강성 지지층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겸손한 마음으로 국정 대전환에 나서야 한다. 실패를 인정해야만 새로운 대안마련이 가능하다. 또 국민의힘을 파트너로 인정해야 한다. 180석의 의석이 무결점과 동의어는 결코 아니다. 협치를 복원시키고, 지금부터라도 달라져야 한다. 그래야 내년 대선이 보이고, 미래를 생각할 수 있다. 국민의힘도 마찬가지다. ‘야당이 이긴 선거’가 아니라, ‘민주당이 진 선거’였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쇄신해야 한다. 상대방의 실수를 통해 쟁취한 승리는 진정한 승리가 아니다. 환호의 시간은 순간으로 짧게 끝날 수 있다. 대선까지 남은 1년, 다시 민심이 돌아서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민심은 파도와 같다.
선임기자 thrk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