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고전에서 가장 현대적인 쟁점에 대한 해답을 발견하곤 한다. 그래서 더욱 고전을 읽는 재미와 의미가 있다. 동양고전 ‘맹자(孟子)’에는 최근 사상적으로 부각되고 있는 동물의 권리(Animal Right)를 그 아득한 시대에 이미 거론한 부분이 있어서 흥미롭다. ‘맹자’는 이상적인 왕도정치를 주장하는 정치사상가 맹자와 부국강병을 꿈꾸는 야심찬 제후들과의 대화로 구성돼 있다. 상충된 목표를 가진 그들이 서로를 찾아가 만나서 이어가는 대화에는 늘 팽팽한 긴장감과 반전이 있다. 그런 대목 중에서 이 책을 읽지 않은 일반 독자에게도 잘 알려진 장면은 맹자와 제선왕의 대화다.
제선왕이 마루에 앉아 있다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를 보게 되었다. 소는 죽음을 이미 알았는지 눈물을 흘리며 울면서 그 앞을 지나갔다. 제선왕은 차마 그 모습을 보지 못하고 신하에게 그 소를 죽이지 말라고 했다. 살아있는 짐승을 죽여서 그 피를 종을 만들 때 틈새에 바르는 의식에 쓰려고 했던 신하는 종을 만드는 일을 그만두라는 지시냐고 반문했다. 그랬더니 제선왕은 그러면 그 소 대신에 양을 사용하라고 했다. 맹자는 제선왕에게 “죽어가는 것을 차마 직접 보지 못하는 그 마음”이라면 천하의 왕으로 군림할 수 있다고 격려했다. 다만 그런 마음을 백성들에게로 확대하라고 충고했다. 맹자 사상의 핵심은 모든 사람에게 이미 내재돼 있다고 그가 주장하는 바 ‘차마 남을 해치지 못하는 그 마음’이다. 이것을 ‘측은지심(惻隱之心)’이라고 하는데, 누구나 다 갖고 있다는 그 작은 싹이 마음 속에서 천천히 잘 자라게 하는 것이 맹자가 강조하는 인격 수양의 방법이었다. 그런 마음이 확대돼 부모에게 효도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결국은 백성 모두를 사랑하는 왕이 된다는 것이 맹자의 왕도정치다.
최근 동물에게도 ‘인권’이 있다고 말하면 비웃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한 상당수 인사는 긍정하기도 한다. 이 인권이라는 말을 학술적인 개념으로 표현하면 ‘자연권(Natural Right)’이라고 한다. 이 개념은 정치철학자들에 의해서 ‘어떤 경우에도 자기 몸과 정신을 지킬 수 있는 권리’로 새롭게 정리되기도 했다. 민주주의가 시작된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 자연권을 누리는 사람은 재산과 교양이 있는 소수에 불과했다. 그런 자격을 가진 사람들만 현실 정치에 교대로 참여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때의 민주주의와 현대 민주주의는 근본정신은 같아도 실제는 아주 다르다. 당시 그리스 도시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아테네 인구의 대다수는 노예였는데, 노예는 육체적으로는 사람이지만 법적으로는 사람으로 대접받지 못했다. 심지어 이들은 농기구와 같은 존재로 인식될 정도였다. 그 후에 등장한 이성적이고 근엄한 로마의 법학자들도 노예를 자연권을 가진 사람으로 인정하지 못했다. 그런 세월이 천년 그 이상을 흘러서 근세에 이르러 노예제도가 폐지되고 비로소 사람이면 누구나 다 천부적인 자연권이 있다고 선언했다. 그 정신이 구현되는 과정이 곧 민주주의 발전사였다.그런데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자연권 개념을 확장해 동물에게도 자연권이 있다고 주장하는 일군의 활동가들이 등장했다. 그들의 노력으로 일부 국가에서는 산업용 동물을 도축할 때라도 인간적인 방식으로 처리할 것을 규정하는 법이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동물학대에 대한 법적 처벌은 아직 미약하지만 실행되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동물의 권리라는 용어가 이제 낯설지 않게 되었다. 축산업 분야에서는 ‘동물복지’라는 말도 사용되고 있다. 급진적인 생태 행동가들은 동물의 자연권 확대를 위한 투쟁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렇다면 사람도 살기 어려운 시대에 동물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은 사치인가?
맹자가 제선왕에게 당신은 천하의 왕이 될 수 있다고 격려했지만, 제선왕은 그 말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맹자는 거듭 설명했다. “타인의 고통에 대해 연민을 느낄 수 있는 그 마음이라면 왕께서는 원하시는 그 큰 꿈을 이룰 수 있습니다. 나는 죄 없이 사지로 끌려가는 동물을 가슴 아프게 여기는 왕에게서 그 단서를 보았습니다”고 말해주었다. 최근에 확대되고 있는 녹색운동의 중심 가치는 타인에 대한 ‘연민’이라고 말할 수 있다. 타인이란 곧 나와 다른 세대, 나와 다른 인종, 그리고 인간 이외의 다른 생물학적 존재 등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개념인데, 그들의 삶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자는 것이다. 타인의 불행은 오로지 그의 잘못 때문이라고 규정하는 자기중심적이고 고립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 이런 녹색운동의 생각과 행동은 모든 존재를 ‘불쌍히 여기는’ 연민의 마음에서 시작한다. 맹자는 측은지심이 작동될 수 있어야 사람이라고 했다. 동물에도 측은지심의 감정이 일어난다면 천하의 지도자가 될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했다. 모든 존재에 대한 연민과 측은지심이 생생하게 살아있는데 이 세상에서 해내지 못할 일이 무엇이랴?
영산대 자유전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