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자, 트랜스젠더 등 성 소수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차별과 멸시는 그들을 죽음으로까지 몰고 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더라도 수많은 성 소수자들이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밝히지도 못하고 불가능한 관계 속에서 또는 아예 사랑을 포기하며 평생을 불행하게 살고 있다. 이혼 또는 한 부모 가정에 대한 눈도 곱지 않다. 소위 ‘정상’이라는 틀을 벗어나는 성 정체성과 가정 형태에 대한 인권 문제가 사회적으로 부각된 것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건만 우리 사회는 왜 이렇게 가부장적 보수 및 근본주의 기독교 세력의 정상 이념을 극복하지 못하는 걸까?
그 답은 정치와 교육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정치는 아직도 성 소수자 문제를 민주주의 문제로 잘못 파악하거나 여론의 뭇매가 두려워 인권문제로 인식하지 못하고 문제 해결의 의지도 없어보인다. 정치가 이럴진대 교육이 어떻게 앞서나가겠는가? 교육부의 성교육표준안이 시대를 역행하거나 성교육 자료가 외설이라는 보수의 비판에 두말 않고 수거하거나, 일부 교육청이 반대 여론을 의식하여 성소수자 인권이 포함된 학생인권조례를 만들 엄두도 내지 못하는 일련의 모습들이 교육의 직무유기를 대변하고 있다. 성 소수자 또는 소위 정상 가정이 아닌 가정에 대한 차별과 멸시는 여론이나 민주주의 문제가 아닌 선진사회로 나아가는데 반드시 해결해야 될 인권 문제다.
세계 최고의 성 평등 또는 성 소수자 인권 국가라는 스웨덴은 어떤가? 교육이 가장 중요한 정치라는 것을 명확히 보여준다. 스웨덴 초등 6학년 자연과학(생물) 교과서는 남녀의 성기, 성교(sex) 그리고 임신 과정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며 실질적인 교육을 할 뿐 아니라 가정에 관해서는 ‘더불어 사는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가정 형태는 아주 다양하다. 형제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으며, 결혼 또는 이혼한 부모, 아니면 한 부모와 같이 살 수도 있다. (중략) 일부 부모들은 같이 살고 싶지 않아 서로 떨어져 산다. 이 경우 아이들은 엄마와 아빠 두 가정을 가진다. 엄마가 둘 아빠가 둘인 아이들도 있고 부모 중 누가 새 파트너를 만나 아이를 낳으면 새로운 형제가 생긴다. 반(半)형제, 플라스틱아빠, 보너스엄마, 또는 계조모 등 여기에 대한 이름은 아주 다양하다.” 일부 가정에 대한 도덕적 폄훼 없이 모든 형태의 가정이 정상이고 소수 형태의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인권을 지켜준다.
‘사랑’이란 단원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사춘기와 10대에 많은 일이 생긴다. 아마 처음으로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어떤 아이는 친구한테 사랑에 빠져 예전처럼 노는 게 이상하게 느껴지고 다른 아이는 동성에게 사랑에 빠진다. (중략) 서로 좋아하는 것을 보여주는 방식도 아주 다양하다. 서로 애인이 되고, 손을 잡고, 포옹을 하거나 키스를 한다.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좋아하지 않거나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다.” 동성애가 여러 형태의 사랑 중 하나로 비정상이 아니며 사랑 행위에서 ‘동의’가 중요한 것을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가르치고 있다.
동성애 문제는 사실 학교에서 지속적으로 교육한다. 고등학교 수학 교과서에 젊은 여자 두 명이 (신혼)아파트를 사고 은행 융자에 대한 원금과 이자를 갚는 문제가 나온다. 다른 나라 교과서에서 남녀 부부가 하는 일을 스웨덴에서는 두 여자 또는 두 남자가 하는 것으로 묘사되기도 하는 것이다. 동성애가 여느 이성애와 마찬가지라는 것을 군더더기 없이 보여준다.
그뿐만 아니라 교사가 학생들에게 ‘우리는 동성애를 이해해야 한다’는 식의 성교육을 못하게 한다. ‘우리’라는 표현은 다수를, ‘이해해야 한다’라는 표현은 동성애는 이해해야 하는 비정상이라는 것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스웨덴 교육은 이렇게 이성애가 아닌 성 정체성 또는 결혼으로 성립된 가정이 아닌 가정도 결코 비정상이거나 비도덕적 혐오 또는 멸시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교육과 정치가 사회적 문제와 갈등을 해결하며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만드는 역할이다.
前 경남교육연구정보원장·스톡홀름대 정치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