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하는 양대 축이다. 그 틈에 낀 남북한으로선 ‘새우 등 터지는 곤란’을 겪지 않기 위해 늘 주의를 게을리 할 수 없다. 트럼프 치세 때보다 더한 미중 갈등이 우려되는 상황 속에 우리가 두 나라를 상대로 동시 외교에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예상대로 미중 양국에서 팽팽한 긴장관계를 확인했다. 지난 2일 발표된 “(중국과 북한에 대한) 공동의 안보 목표를 보호하고 진전시키기 위해 협력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재확인했다”는 한미일 안보수장회의 공동성명이 그렇다. 지난 3일 한중 외교장관회담 직후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한중 간 전략적 소통은 중요하며 매우 적기에 이뤄졌다”며 한미, 한미일의 접촉을 경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래도 공통분모를 확인한 건 다행이다. 한반도(북한) 비핵화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그것이다. 한미일 안보수장회의의 한국 대표인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한미일이 북핵 문제의 시급성과 외교적 해결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했다”고 했다. 한중 외교장관회담을 위해 방중한 정의용 장관도 “중국은 우리 정부의 한반도 항구적 평화정책과 완전한 비핵화정책을 지지하며,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중국에 건설적인 역할을 해줄 것을 요청했고 중국도 할 수 있는 협력을 하겠다고 약속했다”고 했다. 미중 대립 속에서도 비핵화는 불변의 한반도 외교원칙이라는 얘기다. 한반도 비핵화는 미중관계를 비롯한 동북아 정세를 평화적으로 재편할 수 있는 중요 수단이라는 얘기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 미국·중국·영국·프랑스·러시아·독일 등 6대 열강과 이란이 2015년 체결한 국제 다자협상의 모범적 성과인 ‘이란 핵합의(JCPOA)’는 본보기가 된다. 이란 핵 활동을 제한하는 대신 미국의 대이란 제재를 해제하는 ‘상호주의’ 해법이 합의의 핵심인데, 이는 미국은 물론 중국과 북한도 바라는 방식이어서다. 바이든 미 대통령과 블링컨 국무장관은 이미 이란 핵합의 복구를 공약했고, 이를 북핵 해결의 본보기로 제시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과 한미 연합훈련을 동시에 멈추는 ‘쌍중단(雙中斷)’과,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와 북미 평화협정 협상을 병행 추진하는 ‘쌍궤병행(雙軌竝行)’을 골자로 한 중국 해법과 유사하다. 북미가 비핵화와 제재 해제를 단계적, 동시적으로 이행하자는 북한의 주장과도 궤를 같이한다.

그 본보기인 JCPOA 복구 협상이 6일 비엔나에서 시작된다. JCPOA 참여국은 “제재 해제, 핵 이행 조치 문제를 분명히 확인하기 위한 협상”이라고 했다. 핵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사회의 연대 모색이다. 이른바 ‘다자주의’의 재개다. 한반도에도 그런 선례가 있었다. 2003년부터 2008년까지 열린 ‘북핵 6자 회담’이 그것이다. JCPOA 복구 협상은 북핵 다자주의 해법의 필요성을 다시금 일깨운다. 그 실행 여부는 남북한과 미·중·일·러 등 6자 회담 당사국의 의지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