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력원자력이 고리 1호기 해체계획 수립에 필요한 행정절차를 마쳤다. 한수원은 지난주 부산 기장 공청회를 끝으로 작년 7월부터 진행한 해체계획 초안 공람공고와 공청회 일정을 마무리했다. 이를 통해 수정 보완한 최종안이 원자력안전위원회 심사와 승인을 거치면 고리 1호기 해체 작업은 현실화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현안인 사용후핵연료 처리가 초안은 물론이고 최종안에도 빠져있다는 게 문제다. 수명을 다한 원전을 분해할 계획을 세우면서 그 핵심인 핵폐기물 해법은 만들지 못한 것이다. 공청회 과정에서 주민들은 이 부분을 강하게 어필했으나 반영되지 않았다.
사용후핵연료를 원전에서 빼내고 보관하는 작업은 주민 수용성이나 기술적 측면에서 가장 해결이 어려운 난제이다. 4년전 고리 1호기를 영구정지시킬 때 한수원이 세운 전체 로드맵을 보면 정지 후 5년 안에 해체계획을 확정한 뒤 2025년부터는 핵연료를 원전에서 실제로 반출하는 것으로 돼 있다. 이렇게 하려면 최소한 해체계획 확정 전에 사용후핵연료를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처분할 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이 먼저 서야 한다는 의미이다. ‘선 처리방안, 후 해체’는 부산 시민과 관련 단체의 요구사항이기도 하다. 원안위원장 역시 작년 국감에서 “사용후핵연료 관리 정책이 수립돼야 관련 체계를 가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게 상식이다. 그러나 상식에서 벗어난 일이 지금 진행되고 있다. 핵쓰레기가 서울이나 수도권에 쌓여있어도 이렇게 주먹구구였을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사용후핵연료 처리방안이 없는 상태로 고리 1호기 해체계획이 수립될 것이라는 건 이미 예견됐다. 얼마전 정부 주도로 구성된 사용후핵연료관리정책재검토위원회가 팥소 없는 찐빵같은 결론을 내면서다. 재검토위는 처리방식이나 시설입지에 관한 구체적인 결론없이 ‘특별법 제정’과 ‘별도 위원회 구성’을 정부에 주문하며 활동을 마쳤다. 한수원은 당초 해체계획 초안에서 “재검토위가 관련 계획을 수립 중이니 정책이 확정되면 별도로 폐기물 관리안을 세울 것”이라고 했는데 정작 재검토위는 정부로 공을 넘겨버린 것이다. 이 상태대로라면 고리 1호기의 사용후핵연료 문제는 정부가 특별법을 만들고, 처분시설 입지 등을 구체적으로 논의할 별도 위원회를 구성해 결론을 내기까지 한없이 기다려야 한다.
원전 해체 작업이 단시간에 끝나는 건 물론 아니다. 즉시해체라 해도 최소 15년은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가 그 안에는 어떻게든 결론이 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해선 안된다. 핵폐기물을 어디에 어떻게 수용할 지 결정하는 문제는 원전을 새로 짓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현재 고리 1호기 뿐 아니라 2023년부터 설계수명이 완료되는 고리 2, 3, 4호기에 폐기물이 가득 쌓여있다. 중간저장이나 영구처분시설을 짓는데 30년이 걸릴지 40년이 걸릴지 모른다.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