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과학에세이] 소를 찾아 숲 속으로 /김광석

  • 김광석 부산대 교수
  •  |   입력 : 2021-03-22 19:08:24
  •  |   본지 22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오래된 사찰 벽에는 아이가 소를 찾고 길들이다 깨달음을 얻는 과정을 묘사한 ‘십우도(十牛圖)’가 그려져 있다. 우화 속 소는 잃어버린 본성이라는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의미를 담고 있지만 과학적 진리로 해석해도 그럴듯하게 읽힌다. 숲 속에서 무작정 소를 찾는 초기 여정은 비효율적일 수 있다. 하지만 산만한 정보들 사이에서 발자국 같은 중요한 단서를 발견한 후부터 차츰 소의 습성과 자주 다니는 길목을 알게 된다. 우거진 나무 사이를 뛰어가는 소를 목격한 날은 설레는 마음에 잠을 이루지 못할 수도 있다. 마침내 소를 붙잡고 길들이는 과정에는 육중한 덩치만큼 완강한 저항도 감수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을 과학의 시선에서 보자면 오랜 관찰과 실험 결과를 기반으로 하나의 법칙에 도달하는 ‘경험주의’ 과학연구 방법을 떠올리게 한다. ‘소’로 상징되는 관념적 여정에는 이성을 통해 선험적으로 얻는 보편원리의 ‘이론’으로부터 개별 ‘현상’의 지식을 연역하는 ‘합리주의’ 방식이 더 적합해 보이지만 ‘십우도’의 첫 번째 그림은 ‘경험주의’ 방식처럼 아이에게 일단 숲 속으로 들어가길 권하고 있는 것이다.

이론 모형은 산만한 실험 결과를 꿰뚫어 볼 수 있는 안목을 제공하지만 때론 잘못된 편견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지구중심설과 태양중심설 모두 태양계 행성의 움직임을 설명할 수 있었지만 진위를 판단할 수 있는 결정적 단서는 목성의 위성, 금성의 겉보기 모양 변화, 태양계로부터 멀리 떨어진 별의 미세한 위치 변화 같은 사소해 보이는 관측 결과 속에 숨겨져 있었다. 10여 년 받아온 학부실험리포트 ‘검토’란에는 늘 등장하는 문장이 있다. “실험장치가 정교하지 못해 이론과 차이가 발생했다. 장치가 좋으면 오차를 줄일 수 있을 것 같다.” 얼핏 보면 그럴듯해 보이기도 하지만 과학에 대한 오해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실험과목을 단순히 교과서에서 배운 이론을 확인하는 과정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이론은 정답이고 정답과 다른 실험 결과는 불편한 것이다. 이런 불편함을 애꿎은 장치 탓으로 돌리려는 생각은 ‘이론’이라는 고귀한 이데아가 ‘실험’이라는 현실에 오염되지 않게 하려는 신념으로까지 느껴진다. 그래서 이론과 어긋난 실험 결과는 처음부터 관심에서 제외되고 실험수업은 뻔한 결과를 확인하는 지루한 시간이 된다. 하지만 역사 속 많은 과학자들이 그렇게 사유와 논리에만 빠져 관찰을 소홀히 여기거나 기존 이론과 다른 실험 결과를 오차 속에 묻으며 자신에게 다가온 위대한 발견의 기회를 놓쳤다.

설렘과 좌절 사이를 오가며 숲 속을 헤맨 아이에게 소는 결코 숲과 분리된 경험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수많은 시행착오의 실험 경험 또한 요약된 법칙 하나만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 아니다. 소를 품은 숲처럼 실험데이터 속에는 원형의 진리가 살아 숨 쉬고 있으며 어쩌면 현재의 이론이 미처 알지 못한 또 다른 진리가 숨겨져 있을지 모른다. 가령 ‘평면 위를 구르는 공’이라는 지극히 단순해 보이는 운동도 실험 테이블 위에서 구현하는 순간 여러 마리의 소들이 숨겨진 것 같은 다채로운 물리현상의 숲을 만나게 된다. 공은 바닥을 구르며 작은 소리를 낸다. 바닥과의 마찰로 발생한 전하는 주변 먼지들을 당기고, 공기는 공과 바닥의 틈을 파고들며 요동치기 시작한다. 거대한 지구의 회전 역시 작은 공의 움직임에 영향을 줄 수 있고, 테이블은 미세하게 기울어져 있을지 모른다. 우화 속 아이 같이 무지했을 과거의 과학자들은 이렇게 다채로운 ‘현상’의 숲에서 어떻게 ‘법칙’이라는 소를 찾아 길들일 수 있었을까? 더구나 그들이 사용한 실험 장치는 현재의 학생들이 사용하는 것에 비하면 너무나도 원시적인 것들이었다.

교과서는 핵심 과학이론을 잘 정리해 두고 있지만 숲의 경험을 느끼게 할 수 없다. 반면 실험수업은 숲 속의 소를 찾아가는 거친 여정을 재현시킨다. 소의 위치를 정해두고 박제된 소를 끌고 오는 작업이 아니다. 진리를 만나는 순간은 거친 숨을 몰아쉬는 살아있는 소와의 만남처럼 언제나 강렬하다. 그런 살아있는 경험을 위해서는 먼저 ‘자연’이라는 숲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부산대 광메카트로닉스공학과 교수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폭발음 뒤 불길…인근 7000명 대피(종합)
  2. 2정부, 공연장 겸 돔구장 추진…북항 돔 아레나 ‘기회’
  3. 3부산시, 퐁피두 분관·라 스칼라 공연 백지화(종합)
  4. 4이기대 예술공원 사업도 차질
  5. 5프로야구 역대급 흥행에도 쪼그라든 ‘거인 팬심’
  6. 6‘신천지 與 입당 정황’ 친청계 반발…“김 대표, 조사 과정 제대로 밝혀라”(종합)
  7. 7울산 온산 화학공장 화재
  8. 8호텔 셔틀 타고 황령산 야경 보러가요
  9. 9변성완·박상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송치
  10. 10구·군은 맘대로 불법 현수막…민간엔 과태료 폭탄
  1. 1‘신천지 與 입당 정황’ 친청계 반발…“김 대표, 조사 과정 제대로 밝혀라”(종합)
  2. 2신임 靑 비서실장에 임광현 국세청장(종합)
  3. 3김민석 격주 부산행 PK 민심잡기…부마항쟁 기념식 찾는다
  4. 4김지용 “정치검사 1호는 尹”…과거 행적 놓고 與 집안싸움(종합)
  5. 5박형준 “새로 할 일 없는 사람들, 전임 시정 뒤집기 집착”
  6. 6여도 야도 농지 전수조사 질타…임대수탁 부작용 등 지적
  7. 7이 대통령, 부캉이 보러 북항 방문…전재수 ‘돔 아레나’ 건의
  8. 8이헌승 “국제신문 100억대 체임 구속사유”…장관 “엄정 대응”
  9. 9“북극항로 가능성, 시범운항서 확인”(종합)
  10. 10김민석, 주진우 겨냥 “막말 땐 자격 정지 추진”
  1. 1호텔 셔틀 타고 황령산 야경 보러가요
  2. 2부산 호텔업계 “바가지요금 논란 되풀이 막자”
  3. 3금융사 AI해킹 16곳으로 늘어나…130곳은 ‘보안 미흡’
  4. 4올해 자사주 62조 태웠다…‘삼전닉스’ 과반
  5. 5현대차, 인도에 20조 통 큰 투자…생산·연구개발 거점 강화
  6. 6친환경에너지·AI기술 각축…업계 트렌드 읽고 미래로 항해
  7. 716, 17일 ‘부산금융주간’…청년교육·세미나 등 다채
  8. 8주가지수- 2026년 10월 14일
  9. 9市 기관장 하세월 임명절차…청문 통과해도 공백
  10. 10공공기관 이전 연내 발표…“산은·금감원 반드시 부산 와야”
  1. 1폭발음 뒤 불길…인근 7000명 대피(종합)
  2. 2부산시, 퐁피두 분관·라 스칼라 공연 백지화(종합)
  3. 3변성완·박상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송치
  4. 4구·군은 맘대로 불법 현수막…민간엔 과태료 폭탄
  5. 5부산도시철 교대인력 공백 떠안은 직원들…현장 아우성
  6. 6市 ‘시간 쪼개기 계약’ 채용 관행 전면 손질
  7. 7부산중수청장 “지방청 중심 수사…기존 검찰 구조와 다를 것”
  8. 8[단독] “어? EBS서 봤던 문젠데” 부산 고교 118명 중간고사 재시험
  9. 9“나노산단 분양률 50% 고무적…미래전략 앵커기업 유치 목표”
  10. 10오늘의 날씨- 2026년 10월 15일
  1. 1프로야구 역대급 흥행에도 쪼그라든 ‘거인 팬심’
  2. 2인종차별 당한 엄지성…英 경찰 수사
  3. 3거인 3년 연속 7위…레이예스·한동희는 날았다
  4. 4황성빈은 첫 도루왕…끝까지 뜨거웠던 타이틀 경쟁
  5. 5한화, 새 사령탑에 류지현…3년 20억원
  6. 63년 無가을로 계약 만료…김태형 감독 운명은?
  7. 7프로야구 한화, 신임 사령탑으로 류지현 국가대표 감독과 계약
  8. 8HJ重·동부건설, 소외층·골프 꿈나무에 3000만원 기부
  9. 9어깨 부상 김우민, 수술 대신 재활로
  10. 10최동원 어린이 야구교실, 출범 11년 만에 프로선수 배출
우리은행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해운기업 유치, 해사법원 신설 “해양수도 부산 경쟁력 키울 것”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AI 시대, 부산 R&D의 대전환
원자력 청출어람, 스승을 가르치다
국제칼럼 [전체보기]
사라지는 것, 귀 기울일 것
열린 사회와 그 적들
기고 [전체보기]
거장은 떠나도, 오케스트라는 남아야 한다
전문대학을 소개합니다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여름날의 애상, 왈츠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대포에서 만난 퇴계 이황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북극항로, 첫 배보다 중요한 것은 다음 배다
솔직할 수 있는 용기, 당신에게도 닿기를
도청도설 [전체보기]
다시 영화의 시간
사형 생중계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요추부 척추관협착증, ‘메포츠’로 극복하기
B형 간염 ‘바이러스 수치’에 ‘급여’ 맞춰야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캉이’ 스펙터클에서 공존으로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사설 [전체보기]
퐁피두 중단·라 스칼라 보류, 새 문화 대안 필요하다
정부와 정치권, 산은 부산 이전 강력한 의지 보여라
세상읽기 [전체보기]
다민족 사회
부캉이가 북항에 던진 질문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두 미술관, 각자의 역할을 묻다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행위별수가제와 인두제, 오해와 진실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HMM 부산 이전, 해양수도의 시험대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한국이 가진 자산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금가락지가 땅에 떨어진 형국, 곡전재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오스트리아 와인,빈의 시간을 마시다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거울 속의 외계인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