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박상현의 끼니] 믹스커피라는 전통음료

  • 박상현 맛 칼럼니스트
  •  |   입력 : 2021-03-16 19:13:10
  •  |   본지 21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얼마 전 충남 당진에서 키조개 조업 현장을 취재했다. 키조개는 잠수부가 바다 밑을 걸어 다니며 갈고리처럼 생긴 도구로 찍어서 캔다. 이런 조업방식을 잠수기어업이라고 한다. 조업 현장에 배가 도착하자 잠수부는 허리와 등에 총 37㎏에 달하는 납덩어리를 달고 오로지 공기호스 하나에만 의지한 채 바다로 들어갔다.

1976년 세계 최초로 개발된 일회용 커피믹스.
세 시간 동안 바다 밑에서 키조개 2000개를 채취한 잠수부는 배 위로 올라오자마자 가스버너에 물을 끓였다. 몸이 얼마나 얼었으면 저럴까. 측은한 느낌이 들던 찰나, “추운 날씨 배 위에서 고생했는데 커피 한잔하겠냐”는 뜻밖의 말을 건넸다. 주객이 전도된 상황.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고생한 양반이 배 위에서 하릴없이 기다리던 취재팀을 오히려 챙겼다. 그래도 커피 한잔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잠수부는 능숙하고 신속한 솜씨로 커피를 탔다. 1989년 출시된 이래 30년 넘게 조제커피(커피믹스) 시장에서 부동의 판매 1위를 지키고 있는 ‘맥심모카골드’였다. 그 어떤 고급 커피와도 비교할 수 없는 맛이었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종이컵에 담긴 커피 한잔에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표정을 짓는 한 남자의 모습을.

비단 잠수부에게만 그런 게 아니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에서 무화과를 따던 전남 영암의 농부에게도, 매서운 바람을 맞으며 미역을 채취하던 부산 기장의 어부에게도, 얼어붙은 땅을 뚫고 나온 냉이를 캐던 충남 홍성의 농부에게도 커피믹스는 유일하고 경이로운 노동음료였다. 심지어 농어촌뿐만 아니다. 공사현장 임시 사무실로 쓰이는 컨테이너 안에 커피믹스를 쌓아두지 않으면 폭동 분위기가 연출될 정도이며, 돈 몇 푼 아끼겠다고 커피믹스를 제공하지 않는 기사식당은 순식간에 단골 기사님들의 발길이 뚝 끊어질 정도라고 한다. 믹스커피를 마시며 원두를 갈아서 내린 커피의 풍미와 산미를 기대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믹스커피는 커피와는 전혀 다른 맛이며 그만의 역할이 있을 따름이다. 특히나 노동현장에서는 그 역할이 더욱 도드라진다. 종이컵에 든 한잔의 믹스커피는 밥벌이의 최전선에 있는 이들에게 생명수이자 유일한 여유였다.

커피와 설탕 그리고 식물성 크리머를 이상적인 비율로 배합한 ‘커피믹스’는 1976년 동서식품에서 처음으로 출시했다. 우리나라에서 만든 세계 최초의 발명품이다. 포장지를 뜯고 뜨거운 물만 부으면 완성되는 커피믹스의 편의성과 신속함은 산업화 시대에 더할 나위 없이 어울렸다. 시간이 곧 돈이고 ‘빨리빨리’가 최고의 미덕이던 시절에 커피믹스는 최고의 보급품이었다. 심지어 적절한 카페인과 당 그리고 지방까지 보충해주니 노동자에겐 이보다 좋을 수 없었다.

흔히들 우리나라 음식의 역사와 전통을 이야기할 때 ‘임금님 진상품’ 혹은 ‘수라상에 올랐던’이라는 표현을 쓴다. 나는 조선 임금의 밥상보다는 오늘날 이 땅의 노동자의 음식이 훨씬 가치 있다는 입장이다. 더군다나 대한민국이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는데 이만큼 기여한 음식도 없다. 따라서 믹스커피야 말로 우리나라 산업화 시대의 중요한 유산이며, 현대 한국인이 창조한 전통음료라고 생각한다. 맛칼럼니스트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영상] 탈환이냐 수성이냐…‘야권 성지’ 김해·양산 민심은
  2. 2지방선거 출구조사 또 맞을까… 대선 ‘쪽집게’ 예측
  3. 3‘법무부 인사검증’ 논란에 尹 “미국도 그렇게 한다”
  4. 4놀이는 인류 문화 원동력... 국립부산과학관 특별 전시 개최
  5. 5부산 경남 대체로 맑음... 내륙은 무더위 기승
  6. 6총성 울리고도 복도 대기... 텍사스 당국 "경찰, 오판이 참극 불러"
  7. 7BIFC(63층)보다 높게 짓지 말라? 문현1구역 층수제한 갈등
  8. 8흔들리는 선발 야구…롯데, 계산이 안선다
  9. 9강서자이 에코델타 드디어 분양 일정 돌입
  10. 10강서자이 에코델타 견본주택 인기 좋네
  1. 1[영상] 탈환이냐 수성이냐…‘야권 성지’ 김해·양산 민심은
  2. 2지방선거 출구조사 또 맞을까… 대선 ‘쪽집게’ 예측
  3. 3‘법무부 인사검증’ 논란에 尹 “미국도 그렇게 한다”
  4. 4경기 등 경합…광역단체장 민주 5±1, 국힘 12±1 전망
  5. 5기장군민 10명 중 8명, 오규석 직무수행 "잘한다" 평가
  6. 6윤창호가 운다… 부산 출마자 7명 중 1명 음주운전
  7. 7민주 “뒤집자” 국힘 “굳히자”…지지층 사전투표 결집 호소
  8. 8사상구청장 후보 간 부동산 소유 내역 등 놓고 신경전 격화
  9. 9시민패널단에 듣는다 <1> 부산시장 후보 청년정책 분석
  10. 10中 내륙은 코로나 해방?... 北 접경지 주민은 "암담하다"
  1. 1놀이는 인류 문화 원동력... 국립부산과학관 특별 전시 개최
  2. 2BIFC(63층)보다 높게 짓지 말라? 문현1구역 층수제한 갈등
  3. 3강서자이 에코델타 드디어 분양 일정 돌입
  4. 4강서자이 에코델타 견본주택 인기 좋네
  5. 5경성리츠- 1인 가구 증가로 뜨는 생활숙박시설…‘올집 아카이브 부산’ 주목
  6. 6영도에 ‘1인 미디어 스튜디오’ 연다
  7. 7땡볕·열대야 대비하자…유통가 ‘쿨링제품’ 대전
  8. 8동원개발- 양산 첫 동원 프리미엄 브랜드…학세권·슬세권·교통 다다익선
  9. 9고물가에…한국은행, 금리 두달 연속인상
  10. 10소중한마트, 사회적기업 제품 입점
  1. 1부산 경남 대체로 맑음... 내륙은 무더위 기승
  2. 2전문가 “해상부유식 가덕신공항 안전” 한목소리
  3. 3정당·번호 없는 교육감선거, 꼭 이름 기억해 투표하세요
  4. 4[카드뉴스]의사vs간호사 ‘의료판 검수완박!’ 간호법 대체 뭐길래...
  5. 5[공약 팩트체크] 어반루프 “맞다” “아니다” 열차 개념 시각차로 갑론을박
  6. 6[공약 팩트체크] ‘영도선 트램’ 2024년 사업 대상선정 절반만 진실
  7. 7부산 성동중서 전국 첫 코로나19 확진학생 기말고사 치러
  8. 8해운대 모래작품 훼손하면 벌금이 무려 500만 원
  9. 9"한 표 꼭 행사하세요" 초박빙 부산시교육감 두 후보 사전투표
  10. 10“팔만대장경 불 지르겠다” 협박전화에 해인사 비상
  1. 1흔들리는 선발 야구…롯데, 계산이 안선다
  2. 2손흥민 vs 살라흐, 이번엔 ‘서울매치’
  3. 3조코비치·나달 프랑스오픈 3회전 안착
  4. 4오타니 만나는 류현진, 27일 일본 징크스 깰까
  5. 5난타전을 원하면 부드럽게 풀어가라...킥복싱 최강자의 조언
  6. 6흐름 끊는 주루 실책…서튼표 ‘달리는 작전야구’ 헛발질
  7. 7몬스터 vs 이도류…한일야구 자존심 첫 빅매치
  8. 8코로나 이겨낸 임성재 한 달만에 PGA 복귀
  9. 95할 무너진 롯데 7위로 추락, SSG에 5-6 패
  10. 10‘2군행 처방’ 먹혔나…달라진 고승민
우리은행
시민패널단에 듣는다
부산시장 후보 청년정책 분석
부산시장 후보 심층 인터뷰
정의당 김영진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제1부두서 부산비엔날레가 열린다고?
‘15분 도시’에 대한 작은 요청
기고 [전체보기]
엑스포는 스타트업의 미래
재단법인 부산문화회관의 역할
기명칼럼 [전체보기]
모두가 나서야 할 연금개혁
화기광 동기진
기자수첩 [전체보기]
조폭 행패가 돈이 되는 세상…법원만 모르나
문학의 위기 속 신춘문예의 의미 /최승희
김갑수의 생각 [전체보기]
문재인 윤석열 이재명
이제 시대교체다
김석환의 이미 도착한 미래 [전체보기]
또 다른 팬데믹이 온다는데
검은 호랑이 해를 디지털 전환 원년으로
김용석의 시사탐방 [전체보기]
캐릭터 상수와 ‘어쩌나 정치인’
새해의 단상: 새로움이란 무엇인가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길들여 진다는 것에 대하여
태평양 건넌 조선 궁중악사들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장난이 아닙니다”
간절함 없는 민주당, 오만한 국민의힘
도청도설 [전체보기]
쌀값만 왜 하락
줄어드는 수면시간
박상현의 끼니 [전체보기]
육회비빔밥
조방 그리고 낙지
사설 [전체보기]
사전투표 27일 시작…우리 미래 만드는 소중한 한 표
노사 새 모델 필요성 제기한 대법 ‘임금피크제’ 판결
세상읽기 [전체보기]
인구가 많아야 부자국가다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향후 5년, 새 정부의 과제
이수훈 칼럼 [전체보기]
우크라이나 전쟁과 한반도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역사라는 오답 노트
기후협약 결론은 ‘어쩌고저쩌고’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푸틴, 리더의 함정에 빠지다
중국이 우크라이나 사태를 지켜보고 있다
장병윤의 대안 모색 [전체보기]
탈핵으로 가는 길
빈사의 농촌 지켜보기만 할 것인가
전호환의 두잉세상 [전체보기]
새 대통령에 거는 기대, 두잉(Do-ing)
승마와 자기 경영
차재원의 정치평설 [전체보기]
육법정부, 육법당과는 분명히 달라야 한다
대선 직후, 개헌이 꼭 필요한 이유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와인과 이별
한잔의 와인이 만들어지기까지
특별기고 [전체보기]
‘국민 언니’의 원조 강수연 배우를 떠나보내며
오시리아 테마파크 개장을 앞두고 /김용학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엘가와 베르디
봄과 음악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임득명의 ‘가교보월’
이재관의 ‘송하처사도’
  • 부산해양콘퍼런스
  • 부산야구사 아카이브 공모전
  • 낙동강 일러스트 공모전
  • 제21회 국제신문 전국사진공모전
  • 바다식목일기념 대국민 공모전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