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교육은 사회의 공공재이고 따라서 공공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학정책에서 이 원칙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 고등교육 정부 지출은 36.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66.0%를 크게 하회하는 최하위 수준이고, 사립대 비율은 전체 대학의 81.5%로 OECD 최고 수준이다. 우리나라는 고등교육의 공적 기능이 매우 부실하다. 게다가 수도권 대학과 비수도권 대학 간 격차가 크고, 갈수록 그 간극은 되돌리기 어려운 상태로 치닫고 있다. 사회경제적 핵심자원의 수도권 초일극 집중과 이에 편승한 대학 간 서열화로 인해 사회적 공정성과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활동 없이 입지나 정치 등 다른 요소에 기대 부를 얻는 방식을 지대추구라고 한다. 경제학자 고든 털록(Gordon Tullock)은 지대추구 행위가 가치를 파괴하고, 세금을 도둑질하며, 국가를 가난하게 한다고 봤다. 우리나라의 수도권 집중화, 지나친 학벌주의, 재벌독식 체제, 심지어 부동산 투기까지 모두 지대추구 방식이란 점에서 닮은 꼴이다.
2021학년 부산지역 대학 수시는 전문대는 물론이고 15개 4년제 대학 모두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경험했다. 수험생이 3개 학과를 지원하는 정시 역시 경쟁률 3 대 1을 넘긴 대학은 5개 대학에 불과하다. 결국 대규모 미충원 사태로 이어졌다. 미래는 더욱 어둡다. 대학교육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2021년 우리나라 대학입학정원은 49만2000명으로 올해만 7만8000명 이상 미충원(15.9%)이 예상되고, 현재 정원을 유지하는 한 향후 2030년대 말까지 매년 7만~17만 명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대안이다. 당장 시급한 일은 지방대학뿐만 아니라 수도권 대학 정원의 동시 감축이다. 우선 10% 정도 입학 정원을 일률 감소하고, 정원을 줄인 대학에 대해서는 교육부의 재정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원래는 사회적 배려 대상자 등을 위해 마련한 정원 외 충원을 수도권 대학이 기본 가치와 다르게 대거 뽑았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이를 정원 내로 전환해야 한다. 아울러 교육 질을 평가하기 위해 영국 호주 일본 등 다수 국가에서 실시하는 평가 제도를 우리나라에서는 지방대 구조조정의 수단으로 활용한 대학기본역량진단도 원래의 가치로 되돌아가야 한다. 특히 코로나19로 대면수업이 거의 불가능했던 2020년 이후의 상황을 감안한다면 올해 상반기에 계획된 평가를 수정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고등교육의 80% 이상을 담당해온 대다수 지방 사립대와 사립 전문대는 이젠 정부지원형 사립대로 전환시켜 공공적 고등교육의 일원으로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공약인 거점국립대 육성뿐만 아니라 차제에 권역별 국공립대 및 정부지원형 사립대의 통합 네트워크를 구축해 공동학위과정 운영 등 고등교육의 지역균형 발전과 질적 수준 제고에도 박차를 가해야 한다.
관건은 재정 확보다. 그동안 이루지 못했던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을 제정해 제도 내 지역고등교육교부금을 통해 지방대학을 지원해야 한다. 중기적으로는 대학의 공공적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 우리나라 대학 체제를 리셋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미국 캘리포니아 고등교육 마스터플랜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1960년 캘리포니아주에서는 교육의 평등한 접근성과 고등교육 질 향상을 위해 공교육 중심의 대학체제로 재편했다. 유명한 산업사회이론가이자 전체 캘리포니아대학 총장이기도 했던 클라크 커(Clark Kerr)가 설계한 이 계획에 따라 캘리포니아주의 100개가 넘는 대학을 연구중심대학(UC), 교육중심대학(CSU), 그리고 직업훈련 및 성인교육 중심의 커뮤니티 칼리지(CCC)로 재편했고, 고등교육의 수월성 향상을 위한 공적 지원을 강화했다.
이제 우리나라도 신규 고등학교 졸업생 중심에서 실제 지역의 사회경제적 수요에 부합하는 직업교육과 평생교육을 함께 다루는 대학교육체제로 전환이 절실히 요구된다. 정부가 이 같은 체제 도입을 갖추도록 부울경권이 먼저 공동으로 연구 중심의 거점국립대학, 교육중심의 국·공립 및 정부지원형 사립대학, 평생교육 및 직업교육 중심의 정부지원형 전문대학 체제를 구축하며 각 기능에 충실하도록 교육네트워크를 함께 운영해 나가야 한다. 경남에서 선정된 ‘지자체-대학 협력 기반 지역혁신 플랫폼’ 국책 사업을 잘 활용해 부울경과 지역산업체가 함께한다면 혁신을 메가시티지역으로 전환·발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을 수 있을 것이다.
신라대 교수·부산시지방분권협회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