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지 우리의 시야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내비게이션을 켜놓고 화살표가 인도하는 방향으로 운전만 하면 미리 설정해 둔 목적지까지 정확하게 데려다 준다. 도중에 어떤 길을 지나왔던 알 바 아니고, 다른 길은 없는지 궁금해 할 필요조차 없다. 그냥 내달리기만 하면 된다. 일전에 강원도 원주를 다녀왔다는 친구에게 “거기가 지도상 어디쯤 되느냐”고 물어보니 스스로 황당해 하며 “모른다”고 했다. 목적지에 도착만 했을 뿐이지 가는 길도 모르고 목적지의 위치조차 모르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시야 축소 문제는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일어나고 있다. 세간의 화두가 되고 있는 각종 ‘혁신’ 정책들의 전개 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위치 모를 목적지만 입력해 놓고 좌우 살피지 않고 내리 질주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니 극심한 혼란이 동반될 수밖에 없다.
스마트폰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의 확산은 사람들의 마음을 오그라들게 하고 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읽고 싶은 것만 읽는 정보 편식 현상이 심각하다. 자신의 성향에 맞지 않으면 무조건 거부하고 상대방을 무차별 공격한다. 폐쇄적인 사이트를 운영하고 의견이 맞는 사람만 초대하는 단톡방을 개설하여 철저히 아군과 적군을 구분한다. ‘확증 편향’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웬만한 담력이 있지 않고는 공격이 두려워 입을 다물 수밖에 없는 험악한 분위기다. 이는 곧 소통의 위축으로 귀결된다.
인구 규모가 급격히 시들고 있다. 작년에 태어난 아기가 27만2400명에 불과하다. 20년 전과 비교하면 반 토막 난 것이다. 이러한 저출산 추이가 계속되면, 2500년에 이르러서는 한민족이 소멸하게 될 것이라는 상상력 풍부한 예측이 있을 정도이다. 인구의 감소는 도미노 축소 현상을 일으킨다. 당장 대학이 엄청난 타격을 입고 있다. 최근 마감한 전국 대학의 추가 모집에서 정원을 채우지 못한 대학이 부지기수다. 특히 지방대의 타격은 지방의 축소로 연결된다. 젊은이는 떠나가고, 대학가 상권이 사라지는 것은 물론이고 지역에 필요한 연구의 부재는 지역발전의 동력 상실로 이어진다. 작금의 대학 상황에 질겁한 인재들은 박사학위 취득의 꿈을 접을 가능성이 크다. 학문후속세대의 위축은 격화되고 있는 글로벌 경쟁 체제 속에서 나라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
반도체 업계를 비롯한 일부 업종이 호황을 맞고 있다지만 대다수 기업들은 날로 팽배해지고 있는 반기업정서에 위축되고 있다. 쏟아져 나오는 각종 규제들은 기업 활동을 옥죄고 있다. 규제개혁위에 의하면 21대 국회 들어 9개월여 동안 상정된 규제 법안이 벌써 1041건이나 된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일자리가 늘어날 리 만무하다. 지난해 3분기 기준 20대 이하 일자리가 8만6000개 감소했고, 30대 이하도 6만4000개나 사라졌다고 한다. 직장을 못 구한 젊은이들의 축 처진 어깨는 원대해야 할 이들의 꿈의 축소로 이어질까 두렵다.
우리 외교 공간의 축소 또한 걱정스럽다. 자주 목격되는 한미간의 엇박자, 일본과의 갈등, 중국과의 관계를 우려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국내 정치적 목적이 우선되는 축소지향형 외교는 더 크고 중요한 국익을 애써 못 본 체하게 만든다. 주요 국가들과의 불협화음은 그만큼 우리의 국제적 위상을 위축시킴은 물론이다.
오그라들고(縮) 시드는(萎) 사회에 미래가 있을 리 없다.
뭔가 희망적이고 활짝 피는 듯한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사회가 발전하고 역동성을 되찾을 수 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목적지와 그에 이르는 과정을 정함에 있어 자신의 주장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겸손한 마음이 절실하다. 편향되지 않은 전문가의 의견이 존중되어야 숲을 볼 수 있고 건전한 토론과 소통의 꽃을 활짝 피울 수 있다. 정치권이 오로지 자기 진영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내달리는 한 민초들의 마음이 열릴 리 없다. 분열을 조장해 얻은 이익은 현상적으로는 승리한 것으로 보일지 모르나 사실은 매우 초라한 것이다.
또한 과감한 규제 완화를 단행하여 위축 일로의 기업과 대학 등이 스스로의 창의적 방법으로 기를 활짝 펼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개인이건 기업이건 자유로운 장터만 마련해 주면 각자가 궁리한 기상천외의 발상으로 얼마든지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 모든 것을 틀어 막아놓고는 결과만 가지고 잘 못한다고 채찍질해 대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희망은 자유가 가져다주는 역동성에 비례해 부풀어 오른다.
오늘 아침에도 신문을 펼쳐 든다. 긴 호흡의 차분한 담론은 없고 오로지 뭔가에 쫓기는 듯한 성급하고 숨 가쁜 뉴스로 가득하다. 아마도 오그라들고 시드는 시간이 상당 기간 지속되려나 보다. 심히 안타까운 일이다.
동서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