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대한제국으로 가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제국’이라 함은 제왕이 다스리는 나라라는 의미이다. 대한민국에서 제왕적 대통령의 모습이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 민주화 이전의 권위주의 체제 때에는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표현이 특별히 필요 없었다. 당시의 권위주의 대통령들은 독재자로 불렸기 때문이다. ‘제왕적 대통령’은 민주화 이후 등장했다. 민주화 이후 대통령의 임기 중반쯤에 실시되는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의 표심이 야당에게 국회 의석의 과반이 되는 여소야대 상황이 반복되었고, 그때마다 청와대와 여권은 헌법상 대통령의 권한이 약하다는 주장을 계속했다. 그런데, 그러다가 대통령의 임기 말에 대통령의 가족과 측근이 권력형 비리에 연루되는 사건이 발생하면, 대통령의 권한이 제왕적이라 그런 것이니 대통령의 권한을 약화시키는 개헌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 대통령의 임기 중 우리 헌법상 대통령은 식물 대통령과 제왕 대통령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이런 웃기지도 않은 상황을 문재인 대통령이 종식시킬 거라 필자는 기대했다. 현행 헌법 하에서도 제왕적 대통령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런데 반대의 방향으로 그 웃기지도 않은 상황을 끝내고 있는 것 같다.
대한민국 헌법 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라 함은 대통령에게 제왕처럼 입법·행정·사법권이 모두 집중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우리 헌법은 제1조 1항부터 권력분립에 입각한 공화국을 명시함으로서 제왕적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음을 선언하고 있다. 그래서 필자는 우리 헌법은 제왕적 대통령제가 아니라고 주장해 왔다. 그런데 지난해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이 180석에 가까운 의석을 확보하여 거대 여당이 된 이후부터, 최근 김명수 대법원장의 거짓말 사건까지 일련의 과정에서 문대통령이 제왕이 되어가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게 되었다.
국회에서 대정부질문 중에 야당 의원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적인 표현을 쓰자, 국무총리가 국가원수를 모독하는 말이라 꾸짖으며 품위가 없다고 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을 비판하면 국가원수 모독이며, 민주시민의 품위를 갖추려면 대통령을 칭찬해야 하는가? 청와대와 여당은 대통령에 대한 모든 문제제기를 정치적 공격이라며 대통령을 정쟁으로 끌어들이지 말라고 한다. 대통령이야말로 정치적 결단의 책무가 주어진 헌법기관이 아닌가? 국정감사 중에 야당의 문제제기에 대해 여당은 정책을 다루어야 할 곳에서 정치를 한다고 비난한다. 정치학의 분야 중 하나가 정치과정론이고, 국회에서의 입법과정과 국정감사과정은 당연히 정치과정의 한 부분이다. 그런데 국회에서 정치하지 말라니, 정치학 교과서를 다시 써야 할 판이다. 대통령과 여당 의원들은 시정잡배나 하는 정치의 영역보다 높은 곳에 가 있나 보다. 반대가 존재할 수 없는, 절대선의 경지에 올라가 있나 보다.
국회가 대통령과 행정부에 대한 견제의 기능도 해야 하는데, 지금과 같이 선거를 통해 거대 여당이 탄생하고 여당이 청와대의 눈치를 보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은 정당민주주의 국가에서는 항상 가능한 일이다. 국민이 선거를 통해 그런 상황의 발생을 막아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사법부가 소수를 보호하는 역할을 해 줘야 한다. 그런데 대법원장마저 대통령과 여당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법관의 인사에 외부의 영향이 없도록 하여 재판의 독립 그리고 나아가 사법부의 독립을 지켜야 할 대법원장이 대통령과 여당이 무섭다는 얘기를 털어놓고는 안 그랬다고 끝까지 발뺌하며 버젓이 출근하고 있다. 명예는 밥 말아 먹었나? 대법원장도 사람인데 거짓말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거짓말이 사생활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업무와 관련된 것이고 만천하에 드러났으면 사퇴하는 것이 자신의 명예와 조직의 명예를 지키는 것이 아닐까?
이 정도면 문재인 대통령이 입법, 행정, 사법을 다 장악했다고 주장해도 논리적으로 문제가 없는 것 아닌가?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살고 싶지, 대한제국의 신민으로 살기는 싫다. 문재인 정권의 표리부동 아전인수 내로남불 안하무인 후안무치한 언행들이 꿈속에서 일어났던 것이었기를 간절히 빌고 있다.
차동욱 동의대 공공인재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