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깬 생선살을 성형해 이를 굽거나 찌거나 튀겨낸 것을 ‘어묵’이라고 한다. 사실 생선살을 가공한 음식은 특정 국가의 발명품이라기보다는 인류의 보편적인 조리법이었다. 조선시대에도 어묵과 유사한 ‘생선숙편’이 있었다. 어묵의 원조가 일본이라는 인식은 생선살을 튀기는 방식이 널리 퍼지면서부터다. 오늘날 우리가 먹는 대부분의 어묵은 튀겨서 만든다. 그러다 보니 어묵의 별칭에는 유난히 일본어가 많았다. 그 가운데 부산에서만 통용되는 ‘간또’라는 단어가 있었다. 희한하게 부산에서만 어묵을 간또라 했고, 누구도 그 정확한 뜻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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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에서는 어묵을 ‘간또’라고 부르기도 했다. |
일본어 ‘덴가쿠(田樂)’를 한자 그대로 해석하면 ‘밭에서 하는 놀이’ 즉 우리의 농악과 비슷하다. 일본도 우리처럼 농경민족이니 농사의 흥을 돋우고 풍년을 기원하는 놀이가 있었다. 놀이에는 당연히 음식이 따랐다. 들판에 불을 지피고 꼬챙이에 두부, 곤약, 은어, 토란 등을 끼워 된장을 발라 구웠다. 덴가쿠 때 먹는 음식이라 음식의 이름 역시 덴가쿠(田樂)라 불렀다. 야외에서 먹던 덴가쿠는 시간이 흐르면서 가정의 음식으로 정착한다. 모두 함께 만들고 나누던 음식이 누군가가 만들어 대접하는 음식으로 성격이 바뀐다. 즐겁지가 않다. 즐거울 락(樂)자가 빠지는 대신 존경과 공손의 의미를 가진 어조사 ‘오(お)’가 붙는다. 이렇게 해선 ‘오뎅(お田)’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진다.
이처럼 오뎅은 꼬챙이에 끼운 재료에 소스를 발라 굽거나 조리는 음식으로 출발했다. 그런데 간장이 발달했던 동경을 중심으로 한 일본의 관동지방에서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맑은 간장으로 맛을 낸 국물에 꼬챙이에 끼운 재료를 넣어 익혀먹기 시작했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오뎅의 시작이다. 그런데 오사카를 중심으로 한 관서지방 사람들이 보기에는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만행이었다. 결국 관서지방 사람들은 이 음식을 관동식 조림이라는 의미로 ‘간토다키(關東煮)’라고 부르기로 한다.
관서지방 사람들의 저항은 오래가지 못했다. 도쿄가 일본의 수도가 되면서 오뎅의 표준 역시 관동 스타일이 차지한다. ‘간토다키’라는 말은 차츰 사라졌다. 그런데 부산에서는 상황이 달랐다. 한국해양대학교 김승 교수의 논문 ‘근대 부산의 일본인 이주와 생활’에 따르면 1912년 재부일본인의 숫자는 2만5641명으로 전체 부산 인구의 절반이 넘는다. 이들의 출신지를 보면 야마구치현, 나가사키현, 오이타현, 후쿠오카현, 히로시마현, 오사카현, 사가현 순이다. 거짓말처럼 관동지역 출신이 한 명도 없다.
이러한 인구구성을 통해 다음과 같은 추론이 가능하다. 부산에서는 ‘오뎅’이라는 명칭보다 ‘간토다키’라는 명칭이 일반적이었다. 부산 사람들로서는 ‘간토다키’를 ‘간또다끼’라고 발음하는 게 훨씬 자연스러운 언어습관이다. 결국 간또는 간또다끼의 줄임말이 가능성이 높다.
음식과 음식의 명칭은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의 선택의 결과다. 이 칼럼을 통해 어묵을 간또라 불렀던 부산 토박이 분들의 사소한 궁금증 하나가 해소됐으며 하는 바람이다.
박상현 맛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