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전 트위터가 트럼프의 계정을 폐쇄했을 때 재미있는(?) 일이 일어났다. 트위터의 당시 조치는 시위대의 미 연방의사당 난입 사태 뒤에 트럼프의 선동이 있었고 이것이 자사 규정 위반이라는 판단에서였다. 당연하다는 듯 넘어갔던 우리나라와 달리 평소 트럼프를 ‘망나니’ 취급하던 서방 국가들이 일제히 트위터를 맹비난했다. “표현의 자유는 헌법기관에 의해 제한될 수 있는 것이지 특정 기업에 의해 제한되어서는 안된다.”(메르켈 독일 총리) “기업이 아니라 시민이 결정할 문제다.”(프랑스 외무부 부장관) “언론의 자유는 우리 사회의 기본이다.”(호주 재무장관) 표현과 언론의 자유는 민주사회의 기본권이며, 설사 트럼프라 할지라도 침해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런 조치가 언론의 자유를 싫어하는 적들에게 악용될 것”이라는 러시아 야권 지도자 나발니의 경고가 압권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이 ‘언론 개혁법’ ‘미디어 민생법’이라며 이번 국회에서 일련의 언론 관계법들을 발의했다. ‘정정보도시 원 기사 크기의 절반 의무화’ ‘인터넷 기사 열람 차단 청구권’ 등이 열거돼 있다. 가장 큰 독소 조항은 고의나 중대 과실에 의한 허위보도임이 입증되면 실피해액의 최대 3배까지 배상하도록 한다는 규정이다. 이른바 가짜뉴스라는 걸 골라내 엄단하겠다는 취지다. 당초 민주당은 규제 대상이 유튜브나 SNS에서 활동하는 1인 미디어 이용자라고 했으나 포털 뿐만 아니라 기성 언론까지 슬그머니 포함시켰다. 언뜻 언론의 책임 보도를 촉구하는 듯 싶으나 실상은 전혀 다르다.
가짜뉴스는 아직 언론학자들 사이에서도 정확한 개념이 정립되지 않았다. 무엇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분별도 어려운데 국가가 판관의 역할까지 맡겠다는 건 더더욱 위험한 발상이다. 정보와 자료를 독점한 권력을 취재할 때 언론은 처음부터 불리한 환경에 놓일 수밖에 없다. 어렵게 걷어올린 진실도 ‘힘 있는 자’들이 순순히 시인하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보도단계에서 뿐 아니라 수사과정에서도 부인하고 심지어 재판 결과가 나와도 승복하지 않는 사례를 우리는 차고 넘치도록 보고 있지 않은가. 민주당이 법안의 취지를 뭐라고 설명하든 결국은 취재를 위축시키고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하는 쪽으로 귀결될 것이다.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논의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현 여권의 전신인 열린우리당이 2004년 노무현 정부 시절 처음 시도했고, 이명박 정부 때인 2012년에 다시 추진했다. 그때마다 무산된 건 과잉규제 과잉입법 논란 때문이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논할 때 제일 자주 언급되는 국가가 미국이다. 미국에선 허위 보도가 입증만 되면 3배가 아니라 수십배의 피해 보상을 강제한다. 이 과정에서 파산한 언론사도 여럿이다. 그러나 미국은 보도에 의한 명예훼손을 죄로 묻지 않는다. 반론권도 보장하지 않는다. 고의적이고 악의적인 보도인지 여부는 원고가 입증해야 한다. 표현과 언론의 자유는 극히 제한적인 상황이 아니고는 철저히 보호해야 한다는 수정헌법 1조 정신 때문이다. 명백한 허위에 대해서만 민사 책임을 무겁게 지우는 미국과 달리 형사상 명예훼손, 민사상 손해배상, 언론중재법에 의한 반론 제기가 삼중으로 보장되는 우리나라에서 또 하나, 그것도 훨씬 더 센 규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서슬 퍼렇던 전두환 정권의 몰락을 앞당긴 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특종 보도였다. 최서원(개명전 최순실) 태블릿 PC에 대한 끈질긴 추적이 없었더라면 박근혜 국정농단이 백일하에 드러날 수 있었겠으며 촛불 정권 탄생이 가능했을지 묻고 싶다. 대선 후보 시절 ‘표현의 자유위원회’까지 만들어 명예훼손죄 남용 방지 등을 약속했던 게 문재인 대통령이다. 그러나 피의사실 공표를 금지한다는 명목으로 수사 단계의 범죄 보도를 처음으로 막은 게 이 정부다. 어떤 정권이든 언론은 목에 걸린 가시와 같다.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게 언론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야당일 때 우호적이다가 힘을 갖는 순간 언론이 불편해지는 건 진보든 보수든 똑같았다.
코로나 초기 중국의 양심적인 의사나 연구원의 경고가 중국 정부에 의해 묵살된 이후 전세계가 지금 어떤 대가를 치르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면, 국가가 국민의 입을 틀어막으면 그 피해는 결국 국민이 감당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진실로 하여금 거짓과 싸우게 하라.” 영국의 대시인이자 자유주의 사상가인 존 밀턴이 자신의 저서에서 언급한 ‘사상의 자유시장’이라는 개념이다. 400여년이나 흘렀지만 이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믿는다.
진짜와 가짜가 싸우는 곳은 여론의 시장이어야 한다.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에 대한 판단은 국가가 아니라 시간과 국민의 몫이다. 역대로 언론을 적대시하면서 국민을 제대로 섬기는 정권을 본 적이 없다.
강필희 논설위원 flut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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