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미국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 사뭇 도발적인 작품이 등장했다. 이탈리아 조각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아메리카’로, 18K 황금 103㎏으로 만든 변기였다. 카텔란은 “200달러짜리 식사를 하든 2달러짜리 핫도그를 먹든 결과는 마찬가지로, 변기의 물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 이 작품의 메시지”라고 했다. 황금 변기를 소유할 정도의 부자라 해도 볼일을 본다는 행위에서는 빈자와 동일하다는 ‘변기의 평등’을 의미한다. 전시 당시 누구나 이 변기에서 볼일을 볼 수 있었는데, 10만여 명이 변기를 사용했다고 한다. 1%의 부자가 대부분의 부를 소유한 ‘1 대 99’ 미국 자본주의에 대한 신랄한 풍자였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인 2017년, 백악관은 구겐하임 미술관에 대통령 부부의 침실에 걸겠다며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을 빌려달라고 요청했다. 미술관 측은 이를 거절하며 카텔란의 황금 변기를 대신 빌려주겠다고 했다. 고흐의 명작은 특정인이 독점할 수 없는, 모두가 즐겨야 하는 인류의 유산이란 뜻이다. 황금 변기 대여를 통해 부동산 재벌 트럼프에게 미국 사회의 불평등을 환기시키려는 의도도 읽힌다. 구겐하임 미술관 바로 옆에는 황금색으로 도색된 ‘트럼프 타워’가 있다.
카텔란의 ‘아메리카’는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의 생가인 블레넘궁에서 전시 중이던 2019년 도난됐다. 당시 시세로 작품 제작에 투입된 금값만 400만 달러(약 48억 원)이며, 작품 가치는 600만 달러(약 71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전 세계에서 순회 전시하며 ‘변기의 평등’과 ‘빈부 양극화 해소’를 일깨울 수 있는 명작이 사라져 안타깝기 이를 데 없다.
카텔란의 ‘아메리카’와 동기는 다르지만 요즘 러시아에도 변기와 관련된, 작품 아닌 작품이 등장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독재에 항거하다 구속된 시민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의 석방을 촉구하는 시위 군중이 들고 나타난 ‘황금색 변기솔’이다. 지난달 19일 나발니가 푸틴이 소유한 11억 유로(약 1조5000억 원) 규모의 초호화 리조트에 개당 700유로(약 95만 원)짜리 황금 변기솔이 있다고 폭로한 뒤 저항의 상징물이 됐다. 러시아 국민의 13.3%(960만 명)가 최저생계비 이하의 생활난에 시달리는 극심한 양극화 현실이 저항의 원천이다. 그런데도 푸틴은 코로나19를 피해 안전지대에서 머물며 시위 군중을 탄압한다. 러시아는 물론, 러시아 못지 않게 양극화가 심한 우리나라에서도 카텔란의 ‘아메리카’ 전시가 필요하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