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6T(IT BT ET NT CT ST)’라 불리는 첨단산업기술의 여러 혜택을 누리며 살아간다. NT(나노기술)나 ST(우주항공기술)는 아직 요원하지만, 코로나의 유행 속에서 IT(정보기술)와 BT(생명공학기술)의 진보는 놀라움을 넘어 경이로움마저 느끼게 한다.
이러한 변화와 체감의 한 가운데에 ‘공학’이 자리한다. 공학은 인류의 더 나은 삶의 추구를 위한 산업기술과 응용과학 분야를 총칭한다. 근현대 문명 발달과 직결되는 공학의 존립 가치는 이루 설명할 수가 없을 정도다. 그런데 사람들은 공학을 본연의 기초와 이념 부재, 그리고 합리성을 갖춘 표피적 성과라는 비판 속으로 몰아가곤 한다. 왜일까? 혹시 더 나은 성장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만연되어 가는 기술만능주의 때문은 아닐까?
기회가 될 때마다 본교의 공대 1학년생들에게 권하는 책이 한 권 있다. ‘시빌라이저드 엔지니어(The Civilized Engineer).’ 이 책은 인류에게 정반대의 모습으로 다가왔던 그리스와 로마의 멸망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된다. “위대하고 멋진 예술과 철학의 발전을 이루었던 그리스와 상상할 수 없었던 기술로 엄청난 힘을 과시했던 로마가 역사 저편으로 사라진 이유가 무엇일까?” 저자는 그리스의 예술·철학과 로마의 건설기술 간의 상호 결핍을 답으로 제시한다. 즉, 저자는 ‘융합’을 얘기하며, 이러한 융합의 중심에 ‘시빌라이저드 엔지니어’가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번역서 제목이 ‘교양있는 엔지니어’다. 다소 어색하고 언짢은(?) 느낌이 들지만, 제목 속에는 매일같이 변하는 기술을 누리고 향유하면서도, 기술 자체의 결과만을 중시하는 시대 편향에 대한 비판이 내포되어 있다. 저자는 말한다. “시대가 요구하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기술을 생산하기 위한 엔지니어 수는 크게 늘었지만, 그들에 대한 신뢰는 오히려 줄어들며 신임도 역시 추락하고 있다. 또한 엔지니어는 단순 기술생산자로 전락했고, 뭔지 모를 힘(정치행정, 경제, 시민요구 등)에 지배당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예속된 시스템 속으로 들어와 버렸다.” 그러나 저자는 이 문제를 세상 탓으로만 돌리지 않는다. 바로 기술생산의 종사자 즉, 엔지니어 자체에 시선을 둔다. 여기서 이 책의 가치를 찾을 수 있다.
남 탓이 아닌 스스로에 대한 문제 인식을 해결의 지름길로 삼는다. 저자는 자기 성찰, 즉 전문기술인으로서 직업의 철학적 토대를 탐구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 책의 키워드는 단연코 ‘교양’이다. 살을 붙여 풀어보면 ‘엔지니어의 인문학적 소양’이다. 또한 ‘융합’이라는 말도 포함될 수 있다. 저자는 ‘인문학과 공학의 융합’에 대한 강조를 위해 토머스 에디슨, 스티브 잡스, 알버트 아인슈타인 등을 현 세상으로 다시 인도해온다. 그들의 기술적 성공 이면에 자리했던 문학과 예술, 철학 탐구에 대한 일상과 열정을 소개한다.
‘교양있는 엔지니어!’ 왜 엔지니어가 교양을 가져야 할까? 여러 이유 중, 필자는 ‘공학이 가진 사회적 영향력 때문’이란 점이 가장 크게 와 닿는다. 근대 이후 발전된 공학과 연계된 각종 기술의 영향력은 국가와 국민의 존망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그래서 기술이 공익과 공공성 향상을 위해 순수하게 사용된다면 별문제가 없겠지만, 편중된 사익이나 결핍된 공익의 편에 선다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약 한달 전, 부산경실련에서 부산시 전체 시설직공무원 1630명 중 일반토목직이 923명이고 건축직이 472명이며, 이의 합이 85.5%에 달한다는 보도 자료를 발표했다. 이 숫자에 이르게 된 합당한 연유들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쏠림현상이 너무 강해 보이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지속가능성, 스마트시티, 생태복원, 도시재생, 탄소중립, 포용사회, 회복력, 공유경제, 도시방재, 예방도시, 에너지재생, 입체복합, 문화도시 등. 언론과 방송을 통해 하루에도 수차례씩 들려오는 말들이다. 용어 하나하나에는 그리 익숙하진 않지만, 21세기의 도시들이 갖추어야 하는 필수 속성이란 점에 대한 동의는 이루어진 상태다. 먹고 사는 일에만 매달렸던 자족의 시대를 지나, 창조성의 시대를 추구해야 하는 이때, 이처럼 변화무쌍한 도시를 직접 다루는 사람들의 구성이 한쪽으로 쏠려 있다는 것은 문제 양산의 원인이 될 수밖에 없다. 물론 시설직공무원만으로 도시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21세기의 선도 도시를 꿈꾸기에는 크게 부족해 보인다. 어찌 이 일이 부산시의 시설직공무원 수에만 국한된 일이랴.
기술의 발달은 민간분야의 변화와 투자가 가장 중요한 것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아니다. 융합의 기치를 내건 공공분야의 변화가 따라오지 않는다면 기술에 기반을 둔 사회와 경제의 온전한 발전과 도약은 기대할 수가 없다.
인문성에 바탕을 둔 전문성이 발휘되는 도시가 미래도시의 핵심 가치다. 흔들리지 않는 본질적인 기반 위에 융합이 활성화될 때 도시는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다. 이 시대 이 시점, 이제 우리도 실질적인 변화를 추구해야 하지 않겠는가.
경성대학교 도시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