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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손을 흔들고 있었는데 잠깐 반짝였는데 /김이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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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21-01-19 19:34:55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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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되면 달라질 줄 알았다. 코로나19로 숨지는 사람과 경기 악화로 숨 막히는 사람들의 수가 줄어들 줄 알았다. 하지만 누적 감염자 집계보다 어마어마하게 큰 슬픔과 절망감이 엄습해오는 나날이다.

최정례 시인께서 별세하셨다. 어제 아침에 조재룡 평론가가 내게 보내준 문자를 보며 놀라서 숨이 멎는 듯했다. 최정례 선생님과의 마지막으로 통화는 희망적이었다. 봄이 오면 나들이 가자고 하시며 오히려 책방 운영을 걱정하셨다.

20년 전쯤 나는 타클라마칸 횡단 여행을 떠났다. 인천공항에서 처음 선생님을 뵈었다. 현지에 도착한 첫날 나는 비상금을 몽땅 날렸다. 우루무치에서 신비한 활자에 검은 녹이 있는 동전 크기의 청동 주물 하나를 샀던 건데, 알고 보니 바가지를 100배 쓴 거였다. “김이듬 시인아, 넌 잘도 속는구나. 나보다 더 바보구나.” 어쩌면 선생님은 그날부터 나를 걱정하며 측은해하셨던 것 같다. 광활한 사막 한가운데서 내가 오줌 눌 땐 선생님이 분홍색 잠바를 벗어 가려주셨다. 나귀가 싣고 가던 수박이 굴러떨어져 울상인 상인에게서 깨진 수박을 사서는 일행들에게 나눠주며 웃으시던 분. “여기가 오아시스야!” 백양나무 숲 사이를 소녀처럼 뛰어다니시던 시인. 최정례 선생님은 내가 처음으로 사랑을 느낀 생존시인이셨다. “여기 진주야. 바로 나올 수 있지?” 불쑥 전화하셨던 게 15년 전이다. 내가 뛰어나가자 선생님은 햇살 아래에서 손을 흔드셨다. 선생님 내외와 나는 남강가에서 들깨수제비를 먹었다. 내가 책방 여는 걸 가장 반대하셨지만 막상 책방을 열자마자 책이며 그릇이며 청소기 등을 들여주셨다. 물론 잔소리도 한 바가지 쏟아놓으셨다. 3년 전 이맘땐 책방에서 시집 ‘개천은 용의 홈타운’으로 낭독회도 해주셨다. 선생님은 언제나 예고 없는 축복처럼 오셨다. 말을 앞세우지도 않았고 시에도 수식어를 절제하셨다. 나는 선생님을 통해 다른 아름다운 시인들, 낯선 세상과도 연결되었다.

한 나무에게 가는 길은/다른 나무에게도 이르게 하니?/마침내/모든 아름다운 나무에 닿게도 하니?//한 나무의 아름다움은/다른 나무의 아름다움과 너무 비슷해/처음도 없고 끝도 없고//푸른 흔들림/너는 잠시/누구의 그림자니?(최정례 ‘숲’ 전문)

이른 아침 나는 선생님의 영정 사진 앞에 엎드려 쏟아지는 눈물을 감당할 수 없었다. 내 마음 만년 겨울 숲에 온기였던 숨결, 영원히 처음도 없고 끝도 없이 흔들리는 나의 시인, 우리들의 시인으로 계실 것이다.

책방으로 돌아와 청소하고 서가 정리를 했다. 아끼던 책 한 권이 보이지 않아서 잃어버린 것 같아서 이젠 영영 찾을 수 없을 것 같아서 마음이 수습되지 않았다. 그때 정상호 선생님한테서 전화가 왔다. “조금 전에 류지남 시인께서 돌아가셨습니다. 등산 도중에......” 나는 류지남 시인을 2018년 5월의 낭독회에서 처음 뵀다. 그날 하재일 시인의 시집 ‘동네 한 바퀴’으로 행사를 하는데, 멀리 공주에서 한달음에 달려오셨던 분. 마주보는 이의 마음을 데워주던 선량한 미소를 잊을 수 없다.

너무 빨라서. 슬픈 것들이 있다//젖소 송아지는 어미 배 속에서 나온 지/채 십분도 안 돼 걸음마를 시작한다/미끄러지고 꼬꾸라지며 오체투지하듯/젖을 찾아 하염없이 노를 저어 보어 나아가보지만,/이마의 양수가 다 마르기 전에 그만/덜컥 쇠창살 안에 위리안치를 당하고 만다 (류지남 ‘빠른 슬픔’ 부분)

‘너무 빨리 가셨다. 이 설명할 수 없는, 자애롭지도 우호적이지도 않은 날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나는 테이블에 머리를 숙인 채 귀를 막고 있었다. 누가 내 어깨를 툭툭 쳤다. 신정 연휴에 가족과 함께 오셨던 주민분이시다. “이 책 파는 거죠? 그런데 그 뉴스 봤어요? 저 너머 동네 주택과 주택 사이에 신생아가 버려져 얼어 죽었대요.”

누군가 오늘 하루가 거짓말이라고, 개연성 없는 소설이라고 말해주기를. 사람의 목숨이 후드득 날리는 저 눈발 같은, 이 정돈할 수 없이 참혹한 시국을. (제목은 최정례 ‘잠깐 반짝였는데’ 인용이다.)

시인·책방이듬 대표·한양여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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