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는 자신의 정성을 알아주는 사람이 꼭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곁에 있어야 하는 것은, 나를 대단하다고 우러러봐줄 사람이 아니라, 나의 정성을 알아줄 사람일 것이다. 서툰 솜씨로 차린 음식이어서 실제로는 형편없을지라도, 그 마음과 시간을 알아주는 사람. 유려한 필체나 문장은 갖고 있지 못하지만, 정성을 담아 꾹꾹 눌러쓴 편지에 눈물 흘려주는 사람. 비싸진 않더라도, 마음을 다해 고른 액세서리 하나를 받고 진심으로 기뻐해줄 사람. 그렇게 나의 시간과 마음과 애씀을 알아주는 사람이 한 명, 혹은 두어 명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매일의 삶의 애씀이나 정성을 알아주는 사람만 있어도, 인생에서 말도 안되는 망상을 좇거나, 끝도 없는 것을 향한 욕망 같은 것도 줄어들 듯하다. 그러나 자기 삶의 애씀이나 정성을 매일 확인받지 못하는 사람은 더 큰 것, 더 대단한 것, 더 칭찬받고, 더 인정받을 수 있는 거대한 것을 인생 내내 좇게 된다. 물론 그런 사람 중에는 실제로 삶의 작은 인정이나 사랑에 스스로 만족하지 못해서 과한 욕심을 좇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개는 오늘을 확인받고 오늘 속에 마음 한 움큼이라도 머물 여지가 있다면, 그 삶이 너무 허망한 곳으로 흘러갈 일은 적어진다.

매일 오늘 하루도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애써줘서 고맙다고 말해주고, 당신의 마음을 안다고 말해주는 사람의 존재란, 그래서 참으로 소중하다. 대개의 삶이란 그렇게 서로를 진심으로 토닥여줄 사람 몇이면 채워질 것 같기도 하다. 물론, 그런 서로에 대한 마음을 이어가는 건 또 쉽지 않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나의 대단함이나, 나의 능력이나, 나의 위대함 보다도, 나의 나약한 애씀이나, 어설픈 정성이나, 마음을 다한 작은 순간들을 들여다보고, 이해해주고, 기억해주는 사람의 존재가 없다면 이 삶도 금방 메마른 낙엽처럼 되어버릴 것이다.

사실 사람 마음이라는 것은 어느 단계를 넘어서면 그 부드러움으로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가려낸다. 가령 마음이 받아들여지기 시작하면 그 이전에 내가 그토록 집착했던, 어떤 쓸 데 없는 옳음이라든지, 기준이나 목적 같은 것들도 눈녹듯이 사라지는 경우들이 있다. 내가 그렇게 내 안의 어떤 관념에 집착했던 이유는 알고보면 어떤 결핍 때문이었고, 내 마음이 충분히 부드럽지 못한 탓이었고, 그래서 스스로를 지킬 요량으로 무언가를 붙잡고 있던 것이었다는 걸 깨닫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심지어 나도 모르게 타인에게 폭력을 저지르는 일까지도 있었다는 걸 알게되는 순간이 삶에는 몇 번쯤 있게 된다. 왜 그렇게까지 살았을까,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왜 그렇게 사로잡혀 있었을까 하면서 스스로를 의아해하는 순간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때란 대체로 나도 모르게 마음이 부드러워져 있는 순간들인 것이다.

그래서 생각건대 살아가면서 서로의 작은 정성어린 마음들을 포착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찾으며 사는 것이 좋지 않나 싶다. 서로의 하루하루들을, 어떤 마음들을, 지나가는 시간들을 덜 허망한 것으로 만들어주는 사람들을 얻어간다면 그 삶은 꽤나 풍요롭고 좋은 삶이 될 것이다. 대개 삶이나 사람, 혹은 마음의 문제들이란, 가까운 곁에 그런 동료들이나 친구들, 혹은 가족을 두지 못한 데서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서로의 눈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서로의 수고로움을 이해하며 위로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을, 인생에서 몇 명쯤은 꼭 만나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렇게 서로의 정성을 알아보는 일이란 가까운 곳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당장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회사 동료라든지, 가족이라든지, 동네 이웃들과의 사이에서 그의 마음씀이 어디에 머무는지를 유심히 들여다보는 일에서 ‘정성어린 관계’도 시작되리라는 생각이 든다. 나아가 내가 어떻게 마음을 다했고, 당신을 위해 정성을 들였고, 애를 썼는지를 알려주는 조금의 생색내기도 그렇게 서로를 알아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누구도 담아두기만 한 상대의 마음을 알 수는 없다. 서로 말해주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아쉬움만이 쌓여가기 마련이다.

요즘에는 내 곁에서 그렇게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는 몇몇 사람들에게 깊은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새롭게 시작한 올해에도 그런 사람들과 그런 신뢰어린 마음들을 주고받으며 살고 싶다. 가만히 있으면 알아차리지 못할 작은 정성들도 발굴하고, 고마움을 찾아내어, 그렇게 서로가 살아가는 시간들을 더 나은 것으로 인정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마음들에 기대어 이 한 해도 버텨나갈 것을 예감한다.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