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에 삼포개항(三浦開港)이 완결된 이야기가 나온다. 세종 8년(1426년) 1월 18일 기록이다. “웅천(熊川)의 내이포(乃而浦)와 동래의 부산포(富山浦) 이외에 울산의 염포(鹽浦)에서도 무역을 허가하다.” 이때 내이포는 제포(薺浦)라고도 한다. 웅천은 지금의 진해다. 울산의 염포는 지금의 방어진(方魚津) 항이다. 이 기록 상의 ‘내이포 부산포 이외에’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조선 초기 삼포개항은 한번에 3개 포구를 연 것이 아니었다. 진해(내이포)와 부산을 먼저 연 것인데, 염포 개항보다 19년 전으로 올라간다.
건국 때부터 조정의 큰 골칫거리는 왜구의 노략질이었다. 처음엔 토벌 전략을 썼지만 달래기 전략으로 변경하고, 일정 구역 내 왜인들의 거주와 장사, 정박을 허용키로 했다. 내이포와 부산포를 먼저 개방한 것이 1407년이다. 태종실록 1407년 7월 27일자에 기록돼 있다. 삼포개항 이후 삼포왜란이 일어나는 1510년까지 이들 세 포구는 조선사람과 왜인들의 자유 무역이 이뤄지면서 번성했다. 한때 삼포 거주 왜인 수만 3000명이 넘었다.
지금의 울산 방어진은 부산, 진해와 더불어 조선 초기부터 무역항을 겸한 어항으로서 글로벌 해상 전진기지였다. 역시나 전통과 역사는 무시할 수 없는 것일까. 1960년대 이후 방어진은 울산중화학공업 기지 건설의 중심으로 변모했다. 방어진 항을 중심으로 서쪽 울산만 자락에 현대자동차, 현대제철, 현대미포조선, KCC 울산공장 등이 들어섰고 동쪽에는 현대중공업이 자리잡았다. 20세기 후반 국가 경제 도약을 이끈 울산의 힘은 방어진항의 오랜 내력에서 찾을 수도 있겠다.
그런 와중에 울산경제자유구역(UFEZ)이 어제 열린 청사 공식 개청식과 함께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갔다는 소식은 반갑기만 하다. 600년 전 개방된 ‘삼포(부산포 내이포 염포)’의 현대적 완결판이라 할 만하다.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BJFEZ) 지정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 공포된 것이 정확히 19년 전인 2002년이었으니, 우연 치고는 묘하다. 게다가 ‘방어가 많이 잡히는 나루’라는 의미로 이름 붙여진 ‘방어진’의 재도약을 축하라도 하듯, 전날인 13일 20만 마리의 방어가 부산항에 풀렸다. 방어의 대풍년이다. 울산에서 풍어제가 열리는 곳도 방어진항 뒷산인 술바위산(69m)이다. 펄떡 펄떡 뛰는 방어의 힘찬 기운이 UFEZ에도 전해졌으면 좋겠다. 아울러 UFEZ가 주력 산업과 수소 분야 융·복합을 통해 지역 발전과 일자리 창출의 중심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승렬 논설위원 bungs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