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한 오빠는 고향 산비탈에 농막 한 채를 지었다. 사는 읍내에서 이십 리 떨어진 그곳으로 날마다 1ｔ트럭을 몰고 출근한다. 마을에서도 먼 외딴 농막에는 스피커와 마이크 같은 음향기기, 색소폰, 목공 기기와 공구들, 연통 달린 난로, 약간의 주방 기구와 책상, 목재로 빼곡하다. 노모는 한파에도 산골짝으로 들어가는 당신 장남이 안쓰러울 따름이다. 그곳이 놀이터일 텐데 뭔 염려냐고 해도 자식 추운 것만 안중에 있다. 하지만 오빠도 봄이 오면 밭농사 준비로 농막 출입이 뜸해질 것이다.

코로나가 일상을 삼킨 지 일 년째 되는 겨울이다. 태어나 학교에 처음 들어가고도 입학식은커녕 일주일 꼬박 등교한 거라곤 고작 3주나 될까 한 아이들. 이런 딸네 아이들을 데리고 시골에 갔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격상되기 이전이었지만 긴장의 끈은 놓을 수 없었다. 아이들은 시골에 내리자마자 이웃 소 농장으로 달려가 먹이를 주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 시동을 걸 일이 없는 경운기 운전석에 앉아보고, 골목으로 쏘다니며 방구석에서의 해방감을 만끽했다.

골짝 농막은 코로나에 갇혔던 아이들에겐 최고의 놀이터였다. 어수선한 창고 분위기에 잠시 눈이 휘둥그렇던 아이들이 금세 호기심으로 충천했다. 종이박스에 알을 낳고 부화하지 않은 조그만 새알도 뒷전이다. 마이크 전원을 켜자 달라붙어 노래도 아닌 소리를 질러댄다. 아파트 층간소음 걱정으로 ‘조용히 해라, 뛰지 마라’는 소리를 일상으로 듣고 지내는 아이들이 희열을 내질렀다.

오빠는 이곳에서 색소폰 연습을 하고 관객 없는 발표회를 했다고 한다. 생각건대, 주변 신경 쓰지 않고 한껏 불 수 있는 색소폰 연습장으로는 그만이겠다. 산을 울리는 악기 소리에 새도 농막으로 날아들었는지 모를 일이다. 아버지 산도 지킬 겸, 갑갑한 시대를 건너기에 이만하면 한량 놀음에 가깝다. 치수별로 갖춰놓은 목공 공구 자체로 좋다던 오빠에게 농막은 힐링 공간이었다.

주변에 주말 농사를 짓는 이가 몇 있다. 농촌 태생인지라 부모가 허리 꺾이도록 일하는 걸 봐왔기에 일이 고되다는 건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런데도 농막이라고 하면 다분히 낭만적으로 들리고 향수를 부추기는 면이 있다. 풍광 좋고 호젓한 곳에 오두막이든 천막하우스든 짓고 들어앉고 싶은 남자들 속마음에는, 어떤 목적도 없이 흐느적거리고 싶은 막연한 로망 같은 게 잠재해 있는가 싶다.

구포역에서 무궁화호 기차를 타고 30분여 가면 밀양역에 다다른다. 그곳에 컨테이너 농막을 짓고 주말이면 살다시피 하는 이웃이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칩거로 답답할 때 바람도 쐴 겸 밀양 가는 기차를 탔다. 그곳에 가는 날엔 상추나 애호박 같은 제철 채소도 얻었다. 노랗게 익어 떨어진 모과도 줍고, 아름드리 늙은 호박도 굴러 들어왔다. 무와 배추도 뽑아내고, 들깨도 털었으며, 생강도 캐고 무청도 엮었다. 가을걷이가 끝난 요즘 같은 겨울철엔 할 일도 없을 것 같은데, 그 주인은 고향 집에 들르듯 주말이면 농장으로 간다.

그곳에서는 이웃과 툭 까놓고 털털하게 지내는 오지랖도 필요했다. 이웃 농장 주인들과 밥 먹는 자리에도 종종 끼곤 했다. 풍경 하나 매달면 좋을 적막한 농막 마당에 장작을 피우고 불멍 때리는 맛과, 삐걱대는 허름한 원탁에 둘러앉아 차를 마시는 한가로움. 이런 맛을 농막 주인은 일찌감치 알아버린 듯하다. 동행해 함께 기차를 탔던 친구는 다음을 기약하잔다.

전중환의 ‘오래된 연장통’에 따르면, 우리의 현대적인 두개골 안에는 석기시대의 마음이 들어 있다던가. 삶에 부대낀 남자들이 저 사바나초원 야생의 세계를 꿈꾸는 게 농막일까. 수렵 채집 생활로 초원을 뛰어다니던 유전자가 제도라는 틀에 갇혀 집 밖으로 나가려는 본능의 분출인가. 어쨌든, 뛰어놀아야 할 본능을 억제당하는 아이들이나 농막으로 가는 남자들은 닮은 구석이 있어 보인다.

저마다 사는 방식을 바꾸고, 적응해 가고, 새로운 삶을 터득해 가는 때. 평범했던 것들, 너무나 당연한 것들을 다시 누릴 때까지 모두 좀 더 힘을 냈으면 좋겠다.

김나현 수필가·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