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코로나19 백신을 세계 처음으로 승인하고 접종을 시작한 영국은 백신의 종주국이다. 인류 최초의 백신을 개발해 수명 연장에 기여한 의사 겸 과학자 에드워드 제너(1749~1823)가 영국 출신이다. 제너는 소천연두(cowpox)의 고름이나 딱지를 사람에게 주입해 천연두(smallpox)에 대한 인체 저항성을 기르는 원리를 발견하고 이를 증명해냈다. 독성이 없거나 약한 병원체를 이용한 질병 예방법의 시초다. 제너는 자신의 천연두 예방법을 ‘vaccinae’라 불렀는데 오늘날 백신을 뜻하는 ‘vaccine’ 또는 ‘vaccination’이 여기서 파생됐다. 어원인 ‘vacca’가 라틴어로 암소를 의미한다.

고대 중국 전설 속의 제왕인 신농(神農)은 농업의 신이자 의약의 신이다. 신농은 굶주림에 지친 백성들을 위해 농사를 짓고 농기구를 제작하는 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그는 또 수십가지 약초를 모두 직접 먹어봄으로써 각각의 효능과 독성을 밝혀냈다고도 전해진다. 고화 속 신농은 반인반수의 모습이다. 몸은 인간이지만 머리는 뿔이 두 개 달린 짐승이다. 그 짐승이 하필 소다. 소는 농경사회에 가장 큰 이바지를 한 동물이다. 농사와 의약의 대명사인 신농에게 소의 얼굴이 씌워진 이유다. 서양에서나 동양에서나 의학과 소가 심상치 않은 연결고리를 가졌다.

소는 부지런하고 온순하며 인간과 특히 가깝다. 우리나라엔 유독 소와 관련된 지명이 많다. 최근 국토지리정보원의 조사 결과 용과 말에 이어 소가 세번째였다. 부울경에선 부산 남구의 우암동(牛岩洞), 울산 북구의 우가(牛家)마을, 경남 거창의 우혜(牛惠)마을, 경남 밀양의 멍에실 등이 유명하다. 우두머리는 어떤 일이나 단체에서 으뜸인 사람을 일컫는다. 여기서 ‘우두(牛頭)’가 소의 머리다. ‘느릿느릿 걸어도 황소걸음’이라는 속담처럼 소는 묵묵함과 우직함의 상징이다. 큰 사람이 하는 일은 비록 속도가 더뎌도 크고 알차다. 올해가 바로 그런 기대를 갖게 하는 흰 소의 해, 신축년(辛丑年)이다.

의과학의 발달 덕분에 코로나가 창궐한 지 1년여만에 첫 백신이 나왔다. 미국 제약사 화이자와 독일 바이오엔테크가 맺은 결실이다. 천연두에 이어 닭콜레라 백신이 나오기까지 80여년의 시차가 있었던 역사에 비춰보면 비약적인 발전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출시되고 있는 코로나 백신이 인류가 코로나 바이러스와 벌이고 있는 전쟁을 종식시킬 수 있을까. 의약과 인연이 깊은 소의 해가 그 전환점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강필희 논설위원 flut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