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한 올 한 해도 이제 며칠 후면 저문다. 무지막지한 이 전염병은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확진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에 망연자실할 뿐이다. 그나마 백신이 속속 나오고 있으니 내년에는 지금보다 상황이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코로나는 우리 일상의 삶을 멈추게 했다. 언제나 학생들로 가득했던 대학 캠퍼스는 적막공산(寂寞空山)이 되었다. 컴퓨터로 마주보는 사제지간이 어색하기만 하다. 음식 솜씨 좋은 아주머니가 늘 반겨주던 동네 식당의 부엌 가스불은 꺼졌고 폐업을 알리는 종이 한 장이 덩그러니 붙어있는 입구를 멍하니 바라본다. 폐업할 거면 미리 좀 알려주시기나 할 것이지 하는 원망 아닌 원망을 하면서 말이다. 효도의 나라에서 명절이면 선물 꾸러미를 들고 고향으로 향하던 행렬도 멈추어 섰다. 해외로 나가는 하늘 길이 막힌 지 오래다. 국제화니 글로벌화니 하는 말이 생뚱맞게 들린다. 평생 들어보지도 못했던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생소한 말이 사람과 사람의 사이마저 멀게 만들었다.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습관이 생겼고, 마스크로 얼굴의 반을 가린 체 상대를 살펴본다. 지하철 옆자리에 앉은 사람의 갑작스런 재채기에 집단적으로 불쾌한 눈길을 던지고 자리를 뜬다. 크리스마스를 알리는 교회 종소리는 아름답게 울리지만 텅 빈 예배당의 모습은 안타깝기만 하다.
멈춘 것은 일상뿐만 아니다. 정치가 멈추었다. 진영 간의 첨예한 대결은 한 치의 양보 없는 씨름판 샅바 대결처럼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같은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상대에 대한 증오가 극에 달해 있다. ‘검찰 개혁’을 두고 벌이고 있는 살벌한 싸움을 보고 있는 숨죽인 일반 국민은 조마조마한 가슴을 매일 같이 쓸어내린다. 일사천리의 국회는 검증도 안 된 새로운 법을 순식간에 세상에 내어놓고 있고, 이로 인해 생길 영문 모를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다. 정치가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무척이나 큰 나라이다 보니 정치의 멈춤은 사회의 방향을 잃게 만들고 있다.
이웃나라 중국과 일본은 무슨 여유가 그렇게 많은지 우주 개발에 매진하고 있는데, 우리는 미래 먹거리에 대한 구상이 멈추어 서 있다. 그나마 누리고 있는 지금의 반도체, 스마트폰 분야에서 호황은 과거의 축복이다. 각고 끝에 모아놓은 저축액이 바닥을 향해 급속도로 내려가건만 아직은 두둑해 보이는 잔액에 안심해하고 있는 모습이 초라해 보인다. 기업을 옥죄고 있는 각종 규제는 미래 산업으로의 이동을 멈추게 하고 있다. 이것저것 눈치 보아야 할 것 많은 우리의 대표 기업들이 위축되고 주눅이 든지 오래다.
대학도 멈추어 섰다. 코로나 19는 새로운 형태의 대학으로의 변신을 요구하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교육은 온라인, 블렌디드 (온라인-오프라인 혼용), 공간 초월, 저비용-고효율을 위한 공유, 최고의 강의 콘텐츠 수배 등이 키워드이건만 우리 고등교육은 여전히 학습 공간의 제한, 대학 간 공유 제한, 물리적 인프라 구비 등의 오래된 개념에 갇혀있다. 최첨단 대학이라는 미국의 미네르바대학과 같은 대학에 대한 칭송은 자자하지만, 규제 많은 우리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코로나 이전 시대에 만들어진 대학평가 기준에 맞추느라 대학들은 요즘 눈코 뜰새 없이 분주하다. 대학의 사활을 평가에 걸고 있다. 그러니 보다 더욱 중요한 장기발전계획 입안과 연구, 교육 등은 뒷전이다. 바른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길로 갈 수 밖에 없는 현실에 자괴감을 느끼고 있는 교육 현장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젊은이들의 미래가 모호해졌다. 대학을 졸업해도 마땅한 취직자리조차 구하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3만 달러 시대에 걸 맞은 일자리를 제대로 만들어 내지 못한 기성세대의 책임이 크다. 오늘도 알바를 찾아 나서는 젊은이들의 축 처진 어깨는 미래의 멈춤을 암시하고 있다.
남북관계가 멈추어 섰다. 화려했던 남북, 북미 정상회담은 이미 기억조차 흐릿하다. 남북을 오가던 시절이 언제 있었나 싶을 정도이다. 한일 관계도 닫힌 하늘 길 만큼이나 고요하다. 미중 관계가 으르렁거리는 사이 우리 외교의 공간은 더욱 좁아지고 있다.
우리 삶의 터전 부산도 멈추었다. 내년 새로운 시장을 선출하는 문제가 모든 것을 집어 삼기고 있다. 방향성을 잃은 시민은 각자도생 할 처지에 놓여있다.
따지고 보면 코로나19가 우리를 멈추어 세운 것보다 우리 스스로가 우리 사회를 멈추게 한 것이 더 많고 그 내용 또한 매우 엄중하다.
곧 새해다. 새해에는 이러한 멈춤을 멈춰 세우기 위한 지혜의 결집, 그리고 실천의 결기와 행동이 요구된다. 깊은 늪에 빠져있는 닻을 끌어올리고, 힘찬 뱃고동을 울리며 전진하는 멋진 대한민국호(號)를 내년에는 꼭 보고 싶다.
동서대학교 총장